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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서울 종로구 안국동 골목 한켠에서 낯선 풍경이 시작됐다. 새벽부터 늘어선 줄,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입장 번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곳이 바로 런던베이글뮤지엄 1호점이었다. 누군가는 그 긴 줄을 ‘빵 순례’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서울의 새 성지’라 말했다. ‘오픈런’이라는 단어가 유행어로 자리 잡은 것도 그때였다.
이후의 행보는 폭발적이었다. 매장을 낼 때마다 사람들은 또다시 줄을 섰고, 전국 7개 매장이 모두 ‘대박 신화’로 불렸다. 그곳에서 베이글은 더 이상 단순한 빵이 아니었다. 하나의 문화, 하나의 인증, 하나의 경험이었다.
자연스레 기업 가치도 치솟았다. 제빵소는 하나의 브랜드 제국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7월, 국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사를 약 2000억 원대에 인수했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주방에서 시작된 한 베이커리의 신화는, 이제 자본의 언어로 완성됐다.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의 화려한 성공은 노동자의 새벽과 땀 그리고 손끝 위에서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7월, 인천점에서 일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 정모 씨가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법적 사인은 단정되지 않았지만, 유족 측에 따르면 사망 직전 1주 근무시간은 80시간 12분. 하루 13~16시간의 노동, 4시간 남짓의 수면, 끼니조차 거르며 버틴 삶이었다. 근로복지공단 기준상 급성 과로 위험구간이다.
제빵은 겉보기엔 달콤하지만 실상은 ‘중량노동’이다. 유족은 “사망 전 일주일간 80시간 넘게 일한 과로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고인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는 게 유족의 증언이다. 도산점에서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던 그는 인천점 오픈 준비를 위해 다시 현장으로 불려갔다. 매장 문을 닫고도 마감 정리와 발주 확인을 해야 했다.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많았고, 잠은 두세 시간 남짓이어지는 날이 반복됐다고 한다. “오늘은 21시간 일했다”는 메시지를 남긴 다음 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몸은 건장했지만 얼굴빛이 점점 바래갔다. 출근복을 챙겨 나서던 마지막 날, 그는 “가라는데 어떡하겠어”라며 웃었다.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됐다.
런베뮤는 오픈 키친을 내세워 ‘핸드메이드 감성’을 팔지만, 그 이면엔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는 강도 높은 노동이 있다. 런베뮤 창업자는 과거 인터뷰에서 직원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예쁜 매장’의 일부처럼 다루는 시선을 고집했다. 그들은 공간의 장식이 아니라, 노동으로 공간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주체였다. ‘빛나는 오브제’가 되야 했던 노동자들은 한여름 35도를 넘는 매장에서 자연광이 드는 창문 앞에서 종일 빵을 빚었어야 했다. 신입은 월 270만 원, 제빵사는 약 315만 원 정도를 받는다. 업계 상위권이라지만 노동 강도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는 게 현직 제빵인들의 증언이다.
문제는 근로계약서다. 정 씨가 서명한 계약서에는 “근기법 59조에 따라 1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제과점업은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이 아니다. 주 52시간 상한(40시간 + 연장 12시간)을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런 조항이 들어갔다면 법 취지에 반하는 불법계약 구조다. 노동계는 이를 ‘착시형 불법계약’이라 부른다. 하루 10시간 근로, 월 8회 휴무는 언뜻 합리적이지만 계산하면 주 58~60시간대다. 이미 법정 한도를 넘는다. 여기에 월급의 3분의 1가량을 ‘고정연장수당(OT)’으로 미리 책정하는 구조까지 얹힌다. 실제 근로가 고정OT 한도를 넘으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마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현장에선 사실상 ‘연장근로 자유이용권’으로 작동한다.
정 씨 사망 후 유족이 근무기록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 임원은 “과로사로 무리하게 산재 신청하신다면, 저와 직원들이 과로사가 아님을 적극 밝히겠다”고 문자했다고 한다. 진상규명보다 입막음이 먼저였다. 이런 행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 은폐 또는 방해 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 같은 법 제170조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한다.
런베뮤는 고인이 사망 전 일주일간 80시간 근무했다는 유족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직원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3.5시간, 고인의 경우 44.1시간이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매장 오픈 준비 과정에서 일부 연장근로가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노동청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근태관리 강화와 전 직원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밥을 먹여줄 수 있지만, 목숨을 바쳐 일할 회사는 없다. 그 단순한 진리를 잊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청년을 잃는다. 주간 80시간의 노동으로 세워진 빵집의 성지는 결국 한 청년의 생명을 태워 밝힌 등불이었다. 이제는 묻자. “이 빵 에는, 누구의 피로가 들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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