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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김흥식 선생 세상 여의실 때로 돌아간다. 몇 사람이 선생이 시한부 선고를 받아 들으셨다는 소식에 모였다. 학자는 책이 가장 중요하니, 그동안 쓰신 글들을 두 권으로 모아드리자 했다.
내가 맡은 것은 ‘이기영, 그 치열한 삶과 문학적 진실의 수준’, 선생이 나중에 직접 제목을 붙인 연구서였다. 원고를 정리하여 마지막 서문을 붙이실 때, 선생은 직접 쓰실 수 없는 상태에 다다라 있었다. 병석에 누워 서문을 말씀하시는데, ‘작가’라는 말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웅얼웅얼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서문을 대략 정리해서 책을 마무리하기는 했다. 그러나 ‘작가’의 구체적인 유래는 아쉽게 밝히지 못하고 남았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나혜석의 말년에 대한 글을 써야 했다. '나혜석과 수덕사'라는 글에, 김일엽이 친구 나혜석에 관해 말한 대목을 인용하려 하는데, 또 ‘작가’라는 말이 불교에서 말하는 것이라 한다. 출전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요즘에 인터넷이 좋은데, 아무리 찾아도 ‘작가’의 불교 유래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찾다 찾다 지쳐 뻗어버렸는데, 눈에 들어오는 내 방 서가에 꽂힌 ‘불교대사전(홍법원, 2001)’이다. 예전에 설악 무산 스님이 팔팔하실 때 불교 공부 좀 하라고 던져주신 책을 소중하게 받아 들어 서가에 꽂아 놓기만 했을 뿐 제대로 펼쳐 본 적 없었다. 혹시 저기에 있는 게 아닐까, 벌떡 일어나 책을 열어 가나가 순을 훑어가니, 있다. ‘작가’란 탁월한 역량이 있는 선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임제록'에 그 근거가 있음을 밝혀 놓은 것이다.
무산 스님의 속명은 조오현(曺五鉉), 시조 시인이기도 하다. 생전에 만해 한용운의 인연 깊은 백담사에 계시다 입적하신 지 몇 해가 되었다. 그해에 국문학의 대연구가 김윤식 선생도, 또 불후의 작가 최인훈도 세상을 여의었다. 무산 스님은 깨달으신 후 만해를 기리는 많은 일을 하였는데, 이는 한용운과 백담사의 인연이 깊은 데서 온 것이고, 무엇보다 만해의 삶과 문학이 그만큼 소중함을 깨달은 데서 온 것이라 생각된다. 만해는 1905년 1월26일, 백담사에서 수계를 받는다. 계명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였다. 만해의 속명은 유천(裕天)이었다.
만해는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노래한 큰 스님이자 '임의 침묵'의 작가였다. 만해는 1917년 백담사로 돌아가 설악산 오세암에서 정진, 득도에 이른다. 이후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 되어, 당일에 피검, 1921년 12월 말에야 세상으로 돌아온다. 지옥에서 극락을 구했다는 오랜 감옥 생활은 만해의 또 다른 수행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일이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드높은 萬海의 정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내 바로 옆에 계신 줄 알면서도 깊이 들어가기 어려워했었다. 김삼웅의 ‘만해 한용운 평전(시대의창, 2006)’에 나오는 서경보 스님의 회상이다. 불교가 지녀야 할 일구(一句)를 가르쳐 달라는 말씀에 만해는 ‘설중매(雪中梅)’라 하셨다고 한다.
바다가 남에게 다시 먹히게 될 줄 어떻게 알았으랴. 위기가 이렇게 닥칠 줄 어떻게 알았으랴. 이 위기의 시대에 진정한 ‘작가’, 그 선승에 유래를 가진 작가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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