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방지하고,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이 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 10일부터 시행된다.
노란봉투법은 개정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경영계는 ‘경영권 침해와 기업 경영 위축’ 이유를 들어 “기업이 다 죽는다”며 반발했고, 국민의힘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추락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국익은 심각하게 흔들릴 것’이라는 생떼를 부렸지만, ‘노란봉투법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최소한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뚝심을 꺽지 못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를 ‘비용’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봤다는 점에서, 하청 노동자에게는 ‘함께 일한 만큼 함께 목소리 낼 권리’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한국 노동사의 시대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은 기업에게 ‘미래로 갈 것인가, 과거에 머무를 것인가’라는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노동자와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상생과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이란 권력을 내세워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는 ‘황제식 경영’을 반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 기간에 벌어진 두 대기업의 엇갈린 행보는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한국 산업계가 상생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희망’을 엿봄과 동시에 한국 자본이 여전히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낡은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지난달 28일 한화오션이 파업에 따른 손해 476억 원을 배상하라며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2건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기로 결정했다. 이제야 조선하청지회는 3년 넘게 지고 있던 천문학적인 규모의 470억 손배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됐다.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은 “한화오션과 하청지회는 서로에 대한 신뢰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며 “지난 갈등의 과정을 뒤로하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동반성장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한화오션이 노동자를 빚더미로 내몰아 굴복시키던 구시대의 족쇄를 스스로 끊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노동자를 ‘비용’이 아닌 ‘동반자’로 봤다는 점에서 한화오션의 결단은 단순한 ‘시혜’가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라 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 통과를 주도한 민주당은 반색하며 환영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없다. 갈등의 벽을 넘고 신뢰를 다시 쌓았다”며 “이번 합의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과 노동이 함께 공존의 길을 찾아 나선 뜻깊은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한화오션과 거제·통영·고성 조선노조의 476억 손배소 취하 합의를 뜨겁게 환영한다”며 “대승적 결단을 내려준 노사 양측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사갈등을 상생으로 마무리한 이번 합의는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1호 모범사례”라며 “이 합의가 노란봉투법이 안정적으로 노동현장에 안착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측을 중재해 합의를 이끈 이용우 의원은 “노란봉투법 통과가 이번 합의 도출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하청 노동자와 원청 사용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의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한화오션에게는 그동안 소비한 ‘갈등의 비용’을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 승화시킬지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다. 지체되고 있는 조선하청지회와의 단체교섭에도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반면 현대제철은 같은 시기 한화오션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현대제철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와 단체교섭하라는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 기간 현대제철 내 산재사고가 최대 10배까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제철은 법원이 하라고 한 하청노조와의 안전문제 교섭 대신, 제철소 작업 현장에 네 발로 걸으며 공장을 활보하는 ‘로봇개’를 도입했다.
현대제철은 공장 안전을 위한 무인 순찰 시스템의 핵심으로 이 기술을 도입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목소리 대신 노동자를 감시하는 ‘로봇의 눈’을 택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노동자를 ‘인격’이 아닌 ‘통제 대상’으로 봤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달 3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엄상진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법원은 원청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와 교섭하라고 판결했다. 또 법을 어겨가며 비정규직을 쓰지 말라고 주문했다”며 “그런데 원청은 어느 것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하라는 교섭은 안 하고 로봇개만 투입시켰다. 노동자 동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안전 관리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직 노동자들을 관리 통제하고 중대재해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또 다른 방식의 탄압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20세기 초,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당 5달러’를 지급했다. 노동자의 삶을 안정시키는 ‘복지’ 차원을 넘어, 자사의 자동차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상생’에 기반한 냉철한 자본주의적 판단이었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상대방을 파국으로 몰아 자신만 이익을 취하려는 거래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믿었다.
자신도 이문을 남겨야 하지만, 상대방도 이문을 남기는 것이 진정한 ‘거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거래’의 대상을 ‘상생’의 대상으로 봤다. 현대제철이 새겨들어야 할 장사(기업)의 철학이다.
노동자를 ‘비용과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대는 저물었다. 기업 성장의 ‘동반자’ ‘핵심 자산’으로 보는 현대제철을,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기업문화를 기대해 본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