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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는 우주의 법칙이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지만 대부분 잊어버린 열역학 제2법칙, 이 법칙은 우주를 지배하는 가장 냉혹한 진실을 담고 있다. “닫힌 계(system)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쉽게 말하면, 질서 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무질서해진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컵은 저절로 복원되지 않고, 쏟아진 우유는 다시 컵 안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흩어진 카드는 스스로 정렬되지 않는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2025년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이 법칙이 떠오른다. 정치는 날마다 파편화되고, 사회는 진영으로 쪼개지며, 공동체는 개인으로 흩어진다. 대화는 단절되고, 신뢰는 증발하며, 합의는 불가능해진다. 누군가는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사회적 붕괴’라 진단한다. 하지만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는 우주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벨기에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은 노벨상을 받은 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열역학 제2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국소적 질서’는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계속 투입해야 한다는 것. 냉장고가 그렇다. 냉장고 안은 바깥보다 질서 정연하게 차갑게 유지되지만, 그것은 전기라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받기 때문이다. 에너지 공급이 멈추는 순간, 냉장고 안의 음식은 썩고 무질서는 다시 승리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계(system)’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켰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으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거대한 에너지 투입의 결과였다. 국민의 땀과 눈물, 희생과 헌신이라는 에너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에너지 투입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었다. 정치권은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진영의 승리에 에너지를 쏟는다. 언론은 진실 탐구가 아니라 클릭 수에, 교육은 인재 양성이 아니라 입시 전쟁에 에너지를 낭비한다. 이렇게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는 순간, 엔트로피 증가는 가속화된다. 결국 종국에는 무질서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일까.
물리학자 김상욱의 관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우주가 필연적으로 무질서를 향해 가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의미 있는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질서를 창조해 왔다. 예술이 그랬고, 과학이 그랬으며, 사랑이 그랬다. 모두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국소적 승리였다.
프랑스 안무가 요안 부르주아의 퍼포먼스가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공연은 중력이라는 우주의 법칙에 맞서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중력으로 인한 추락에 몸을 맡기되, 그 추락을 도약으로 전환시킨다. 트램펄린의 탄성 에너지를 이용해 떨어진 곳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법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칙을 이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를 다루는 지혜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도 이것이다. 무질서를 탓하는 대신,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낼 에너지를 다시 모으는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진영 논리 대신 국가 미래에 에너지를 쏟고, 언론은 갈등 증폭 대신 사실 검증에 힘을 쓰며, 국민은 분노 표출 대신 건설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에너지 투입이다.
물리학자 프리고진이 발견한 진실이 여기에 있다. 닫힌 계는 무질서로 치닫지만, 열린 계는 다르다. 외부와 에너지를 교환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대한민국은 닫힌 계가 아니다. 우리에겐 아직 선택지가 있다. 에너지가 고갈된 게 아니라 방향을 잃었을 뿐이다. 그 에너지를 다시 모으는 순간, 엔트로피의 증가를 늦출 수 있다. 아니, 국소적으로는 역전시킬 수도 있다.
칼 세이건이 우주 저편에서 찍은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며 말했듯,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은 광막한 우주에서 먼지만큼 작은 점이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대립, 증오와 분열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한없이 사소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은 점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히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법칙에 순응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에너지를 모으고, 방향을 정하고, 함께 힘을 쏟는다면 우리는 이 작은 점 위에서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무질서는 우주의 법칙이지만, 질서를 향한 방향전환은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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