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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북 경주가 세계 외교의 중심 무대로 떠오른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개막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과 잇달아 회담에 나서며 ‘실용외교’의 역량을 총투입한다. 쿠알라룸푸르 아세안+3 정상회의를 마친 그는 곧바로 경주로 이동해 ‘정상외교 슈퍼위크’의 본무대에 오른다.
이 대통령의 첫 일정은 29일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개막식 특별연설이다. 그 직후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외교·경제 모든 현안을 압축한 최대 승부처다. 8월 워싱턴 회담 이후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 35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협상이 여전히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타결에 매우 가깝다”고 발언했지만 투자 규모와 손실 분담, 배당 방식 등 세부 쟁점이 남아 있어 정상 간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안보 협상도 병행된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동맹 현대화 합의문 등이 문서화 단계까지 진행됐으나, 관세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공동 발표는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실질적 이익을 확보하면서도 동맹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 달 1일에는 시진핑 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시 주석의 방한은 2014년 이후 11년 만으로 경색된 한·중 관계 회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중국이 차기 APEC 의장국이라는 점에서 ‘협력 지속’의 상징적 합의가 예상되지만 미·중 경쟁 구도 속 한국의 외교적 줄타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이 대통령은 “안미경중(安美經中)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미국 중심의 경제·안보 구조를 분명히 했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실질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END(교류·정상화·비핵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중국의 협조 확보도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30일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이시바 전 총리와 셔틀 외교 복원을 이끌어냈지만, 우익 성향으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총리와의 회담은 새로운 시험대다. 역사 문제에 대한 원칙을 지키면서도 한·미·일 협력의 안정적 틀을 유지해야 하는 외교적 균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미리 도쿄에 파견해 회담 조율에 나선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면 좋겠다”며 공개 러브콜을 보냈고, 대통령실은 “즉흥적 만남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2019년 판문점 회동처럼 단기간 준비로 성사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 외교’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외교당국은 “북측 반응이 없어 실제 회담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상황 전개에 따라 24시간 대응 체계를 유지 중”이라고 전했다.
경주 ‘메가이벤트’ 개막…K-소프트파워로 실용외교 완성
이번 APEC은 단순한 외교 회담을 넘어 ‘K소프트파워 외교’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APEC 유통 퓨처테크 포럼’을 열고 ‘경주선언’을 채택했다. 롯데쇼핑·GS리테일·쿠팡·현대백화점·아마존·징둥닷컴 등 국내외 유통기업 300여 명이 참석해 인공지능(AI) 전환, 친환경, 국제표준 협력을 3대 과제로 채택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은 “APEC은 세계 GDP의 60%, 교역량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경주선언이 산업과 기술의 미래를 잇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개막한 ‘K소프트파워’ 부대 행사도 눈길을 끈다. 경주 플레이스씨 갤러리에서는 김수자·하종현 등 10인의 작가가 참여한 현대미술전 ‘일상의 판타지’가 열리고, 황룡원 중도타워에서는 각국 정상 배우자들을 위한 K뷰티·웰니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AI 피부 진단, 사운드 테라피, 전통주 페어 등은 한국의 기술과 감성을 결합한 새로운 외교 무대로 평가된다. 박 부회장은 “산업과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창의적 외교”라며 “한국의 미래 비전을 세계에 제시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경주는 이미 전시(戰時)에 준하는 보안 체계로 전환됐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하루 앞둔 28일, 경찰은 경북 전역에 최고 수준인 ‘갑호 비상’을 발령하고 1만9000명 규모의 인원을 투입했다. 보문관광단지 일대는 외부인 출입이 전면 통제됐고 드론 무력화 장비와 폭발물 탐지견이 배치됐다.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는 공항 수준의 보안 검색대가 가동 중이며 군·경·소방이 합동으로 도로와 교차로마다 이중 검문을 실시한다. 미국 대통령이 머물 힐튼호텔은 차량 검문소와 가림막이 설치돼 일반인 출입이 차단됐다. 전용 리무진 ‘더 비스트’가 동선을 점검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경주 전역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경찰특공대 관계자는 “한 건의 돌발상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24시간 대응 중”이라며 “드론 등 비인가 비행체는 사전 경고 없이 격추된다”고 밝혔다. 특히 황리단길과 대릉원 등 관광 명소까지 특별치안구역으로 지정돼 지역 경찰이 범죄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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