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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 위에서 24시간 즉시 결제되고 스마트계약으로 자동 정산까지 되는 미래 결제의 장점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7일 발표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 방안’에서 시장의 물음에 응답하며 혁신을 부정하지 않되 신뢰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한은은 통화의 범용성을 지닌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압도적 시장 우위를 지니고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런 ‘달러 편중의 성공 공식을 원화에 그대로 이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국내 결제 인프라의 높은 효율성과 낮은 수수료 구조를 감안할 때 이점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현실을 짚었다.
한은은 또 ‘디페깅’ 위험을 설명했다. 디페깅은 1코인은 1원과 같이 스테이블코인이 약속한 고정비율에서 가격이 이탈하는 현상을 말한다. 법정통화와의 1대1 연동은 약속일 뿐 보증이 아니며, 준비자산 구성이 다르고 발행사의 신용도가 제각각인 한 동일 코인 간 교환비율조차 항상 1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때 달러 연동 코인이 0.88달러까지 밀린 사례는 ‘스테이블’이 기술만으로 담보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통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비달러 코인은 흔들림이 더 크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코인런’ 문제도 지적됐다. 준비자산이 전부 안전자산이라 해도 유동성 위기 때는 매도 압력이 순식간에 몰릴 수 있다. 클릭 몇 번이면 대규모 상환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발행사가 들고 있던 단기채 매각이 전통 금융시장으로 충격을 전이시킬 수 있다.
소비자 보호에 공백이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예금처럼 예금자보호가 적용되지 않고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지원도 없다. 현재 글로벌 관행처럼 발행사가 기관에만 직접 상환하고 개인은 거래소에서 매도해야 한다면 급락 국면의 손실은 소비자가 떠안는다. ‘법정화폐와 동일하다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피해는 커질 수 있다.
‘금산분리 훼손 우려’도 있었다. 빅테크나 유통사가 자체 생태계 안에서 코인 결제를 밀어붙이면 거래 데이터와 금융 기능이 결합된 독점력이 커지고 플랫폼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 미국도 올해 제정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에서 비금융 상장기업 발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취지라는 점을 상기했다.
규제 우회 수단이 되고 자본유출 리스크가 크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은은 익명성이 강화된 환경에선 개인지갑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전환, 해외 이전의 경로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통화정책 파급력 약화 가능성도 지적됐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조절과 지급준비 제도 밖에서 ‘유사 화폐’가 늘어나면 단기금리 변동성과 국채 수급 왜곡이 커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상환에 따라 단기금리 방향이 기준금리와 어긋나면 물가안정 목표 달성의 경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견해다.
금융중개 기능도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디파이(DeFi)’ 대출이 커질수록 이러한 ‘그림자 중개’ 전이가 가속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서 말하는 디파이는 탈중앙화 금융으로, 은행 같은 전통 중개기관 없이 블록체인 상의 스마트컨트랙트가 예금·대출·환전(스왑)·이자 지급 등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코인 발행사로 소매예금이 이동하면 은행의 안정적 대출 여력이 줄고 자금조달 비용은 높아지며 중소기업·자영업자 같은 취약부문의 대출 문턱은 올라간다.
한은은 “혁신을 막자는 게 아니라 신뢰를 제도화하자”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핵심은 은행 중심 발행과 공공 인프라와의 연결이다. 발행 주체를 엄격한 건전성·유동성·외환규제를 이행하는 예금취급기관으로 제한하거나 은행 컨소시엄이 주도하는 모델을 우선 검토하자는 것이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의 편익은 인정하되 그것이 화폐의 지위를 얻기 위해선 ‘기술’이 아니라 ‘신뢰’가 먼저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형 해법은 은행 중심의 발행 구조, 예금토큰과의 보완적 설계, 그리고 자본·외환규제와의 정합성 확보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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