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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냐 가짜냐. 이 문제를 ‘카게무샤’(影武者, 1980)만큼 예리하게 포착한 영화는 다시 없을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黒沢明, 1910~1998)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가 한국에서 개봉된 것은 1998년 12월12일. 일본 문화 개방 이후 한국에 들어온 두 번째 영화였다.
첫 번째는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1947~) 감독의 ‘하나비’(HANA-BI, 1997)였다. 갑자기 그 무렵이 생각난다. 영화 ‘우나기’(1997)도 좋은 영화였다. ‘하나비(花火)’는 불꽃을 뜻하고 ‘우나기(うなぎ)’는 민물장어를 뜻한다. 문학에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열풍에 이어 일본 영화도 많이 보던 시절이었다.
일본 영화 생각을 하니, 또 갑자기 도쿄 아사쿠사의 사찰 센소지(浅草寺)며, 그 근처에 있던 문 연 지 백 년이 넘는다던 장어요릿집, 버드나무 가지가 치렁치렁 늘어져 밤의 운치를 담고 있던 집도 떠오른다. 일본인들이 자기를 잘 보존해 가는 것에 깊은 심적 고통을 느끼며 한국 문학의 본체를 찾고 세워 보겠노라 ‘무딘’ 칼을 갈던 시절이었다.
각설하고, ‘카게무샤’는 구로사와 감독의 문제작으로 화려한 색채감이 두고두고 인상이 깊다. 조선을 한없이 동정했던 문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일본의 미를 ‘선의 미’의 조선에 대비해 ‘색의 미’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카게무샤’는 일본 문화를 대표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구로사와는 손수 그린 콘티들을 들고 태평양 건너가 거액의 제작비를 댈 영화사를 찾아냈다고 한다.
옛날, 일본 전국시대에 다이묘(大名)들은 천하의 패권을 두고 쟁패를 벌였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1582),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 외에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1521~1573)이라는 이도 있었다. 영화는 이 사람의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진짜를 꼭 빼닮은 ‘그림자 무사’를 두곤 했는데, 다케다 신겐도 어느 비렁뱅이 좀도둑을 자기를 대신할 자로 예비해 두었다. 그런데 전투에 나갔던 다케다 신겐이 가슴에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나자 신겐의 가신들은 위기를 견디기 위해 신겐의 유언대로 3년 동안 ‘그림자 무사’를 내세우기로 한다.
영화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가짜임이 들통날 수도 있는 위기들을, 비렁뱅이 그림자 무사는 용케도 넘겨 간다.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참여해서 생전의 신겐처럼 ‘움직이지 않는 산’의 연기를 해내기 위해 허둥대기도 한다. 무술을 익히지 않은 비렁뱅이가 진짜 무장이었던 신겐의 역할을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비렁뱅이는 끝까지 진짜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흥미로운 문제작의 플롯은 비극적이어야 한다. 가짜의 진짜 연기가 세월의 흐름을 따라 농익을 무렵 그는 진짜 신겐만 탈 수 있는 준마의 등에 올라타려다 그만 부상을 입고 만다. 진짜 신겐이 흉터 자국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아무 표징이 없는 이 가짜는 이제 정체가 주위에 탄로난다. 대역으로서의 효력을 잃은 가짜는 영주의 대저택에서 초라하게 쫓겨난다. 영화 속 이야기는 그 뒤로 계속되지만 여기서는 이 가짜의 몰락에 관해 주의를 집중해 보기로 한다.
가짜는 어떻게 해서 진짜가 될 수 있나.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진짜를 그럴 듯하게 흉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진짜가 되려고 피나게, 처절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짜는 어느새 진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처음부터 자기가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아예 진짜가 될 수 없다.
나면서부터 진짜인 사람은 없다. 흉내나 내는 자는 반드시 그 정체가 탄로 나게 마련이다. 그런 때가 왔다. 말에서 떨어질 자는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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