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은 ‘생각의 질’에 따라 다르게 옵니다. 생각의 질이 높으면 그만큼 많은 돈이 따라오고, 생각의 질이 떨어지면 가지고 있던 돈이 나가게 됩니다. 생각의 질이 낮으면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생각의 질을 높이도록 노력하십시오….”
신경애 작가의 소설 ‘이상한 알베르게’의 한 대목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열두 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질문하고 답을 받는 신기한 경험을 거듭하며 차츰 존재와 삶의 근원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위의 글은 주인공이 두 번째 알베르게에서 ‘부의 불평등’에 대해 질문하고 받은 답의 내용이다. ‘부(富)’도 그렇고 ‘생각의 질’도 그렇고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걸음을 멈추게 되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부’를 이루는 것까진 감히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가난’일 것이다. 생각의 질을 따지기는커녕 생각의 겨를조차 없이 살며 가난과 함께 감내해야 하는 것들에 에워싸인 낮은 곳의 약자들…. 그들에겐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이 지상과제다.
A씨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옥으로 쓸 작은 건물을 보러 다니는 잘나가는 하청업체 사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갑’에게서 시작되었다. 방문판매 조직을 가진 원청회사들이 코로나19와 함께 발주를 멈춘 것이다. 대금 결제가 미뤄지고 주문이 끊기면서 그는 벌어 놓은 돈으로 회사의 고정비용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상황이 다시 좋아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며 가진 돈이 바닥나자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소상공인대출을 받고, 수년 전 개설해 놓았던 마이너스통장까지 쓰게 되었다.
올해 초 A씨는 마이너스통장의 자동갱신 기한 10년이 다 되어 대출금을 갚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갑자기 목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은행에선 대출금을 10년 장기 대출로 전환해 매달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게 했다. 가진 돈은 바닥났지만 신용점수가 여전히 높았기 때문에 보통 15% 한다는 이자율을 13%로 낮춰 주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3.5%. 대출에는 5% 내외의 이자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마이너스통장 대환대출엔 13~15%의 이자율을 적용해? 일종의 벌칙인가?’ A씨는 씁쓸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원리금으로 매달 상환해야 하는 돈은 200여만 원, 벌칙 적용으로 이익을 챙기는 건 은행이다. 중간에 낮은 이자로의 대환대출을 실행한다는 소식에 은행에 문의했지만 전년도 수입이 없거나 적을 경우 DSR 규제로 대상이 되지 않았다.
가계대출과 연체율의 규모가 늘자 금융당국에선 다시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금리를 높이면 대출이 줄 것이라는 탁상공론의 발상이자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약자들을 더 많이 연체로 내모는 악순환의 카드다. 코로나19는 지나갔지만 그 바람에 주저앉은 수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오늘 상황이다.
A씨의 선배가 술을 사며 말했다. “기죽지 마라. 기 한번 죽으면 다시 살리는 데 10년 이상 걸린다.” 그 말을 들으며 그는 그저 웃었다. 주저앉은 걸 다시 일으키기 힘든 게 ‘기’뿐이겠는가. 개인이든 국가든 되살리기 가장 어려운 게 ‘경제’일 것이다.
8월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나라가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대다수 언론과 야당에선 현 정부를 탓하지만 우리 경제는 지난 정부 때 망가져 버렸다는 게 팩트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누가 정권을 갖게 되든 앞길이 뻔히 보였기 때문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지하던 많은 사람이 내심 그가 후보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해도 대외 사정 또한 최악인 상황에서 경제를 되살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묵묵히 열심히 뛰고 있다. 그리고 이번 중동 순방에서 106조 원이 넘는 투자유치 성과를 올리며 약속한 ‘영업사원 1호’ 역할을 해냈다. 앞으로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문제는 시간이다. 거창한 성과가 실감할 수 있는 효과로 파급되기엔 시간이 걸린다.
‘생각의 질’이 높지 않은 대다수 약자들에겐 코앞에 닥친 밀물과 그것을 막을 둑에 난 작은 구멍 하나가 아프도록 절감될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곧 다가올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다. 가족을 포함해 관련된 사람들까지 더하면 그 수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들을 정부가 지켜 주고자 한다는 것을, 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정부가 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민심을 얻고 그 힘으로 나라를 바로잡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순서고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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