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방향 잃은 질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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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4-16 06:30:55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는 약 400km. 우리는 그 거리를 자동차로 수 시간, KTX로도 두 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지구 위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서울~부산을 단 1초에 왕복하는 속도로 우주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구는 쉴 새 없이 자전하고 공전하며, 태양계 전체는 광대한 은하를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은하 자체의 우주적 질주까지. 이 모든 것을 더하면 지구 위의 인간은 초속 800km, 시속 290만km에 가까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빠른 속도로 광막한 우주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낀다. 움직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그렇다. 정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 언론은 익숙한 프레임 속에 세상을 고정시킨다. 국정은 여전히 ‘누적된 관성’에 발목 잡힌 채 제자리를 맴도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말 제자리인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그 평온 뒤편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 궤도로부터 이탈할 위기에 놓여 있다. 아니, 방향 잃은 광속의 속도로 궤도 이탈 중이다.

움직이고 있으나 느끼지 못한다면, 그래서 방향을 잃게 된다면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대한민국이 지금 지켜야 할 것은 성장도 복지의 총량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문명의 궤도 자체다. 국가 시스템이 좌표를 잃는다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도 결국 추락하는 지구 위의 환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표의 수가 아니라 질서의 가치로 판단된다. 그런데 그 질서가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허물어지고 있다. 이건 단순한 정치 전선이 아니다. 조용히, 은밀히, 그러나 치명적인 속도로 대한민국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즉 법치, 사법의 독립, 언론의 균형, 교육의 중립 등이 하나씩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해체되고 낯선 프레임 속에 재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은 지금,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를 초속 800km 속도로 움직이는 자신을 못 느끼듯, 대한민국이 위태롭게 치닫고 있는 방향과 속도에 둔감하다.

정지된 듯 보이지만 격동하고 있는 나라. 그 인식의 간극이야말로 보수의 경계심이 다시 깨어나야 할 이유다. 혼란의 관성은 크고, 속도는 빠르며, 외부 간섭은 집요하다. 지금 이 속도를 감지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어느새 서울도, 부산도, 자유도 잃고 말 것이다. 하늘은 말이 없다. 이제 땅이 대답할 차례다.

박선옥 논설실장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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