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보당국 수장이 해킹에 의한 선거 조작의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달 주요 정보기관장들이 중국공산당(중공·CCP)을 일제히 ‘주적’으로 꼽은 데 이어 미국 기준의 외세에 의한 선거관리망 침투와 조작 사실을 정보당국 수장이 또다시 공론화한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툴시 개버드 국가정보장실(DNI) 실장은 1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장관급 내각회의에서 “전자투표시스템이 오랫동안 해커들의 공격에 취약했고, 해커가 투표(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악용하는 데 취약하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는 2020년 치러진 미국 대선이 조작에 의한 부정선거였다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의 발견 내용을 다시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미 보수 언론들과 여당 중진들은 평가하고 있다.
개버드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장관들을 바라보면서 “(확보한 증거는) 종이투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려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동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시사한 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가 미국 선거는 공정하다고 신뢰하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확보한 증거에서 드러난 해킹의 주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바이든정부 말기인 작년 2월 DNI가 펴낸 41쪽 분량의 ‘연례위협평가보고서(ATA·Annual Threat Assessment)’는 중국을 비롯한 이란·러시아 등의 미국 선거 개입 시도와 가능성을 강력하게 공개 경고했었다.
그러나 올해 3월 트럼프 행정부에서 DNI가 낸 ‘연례위협평가보고서’에는 중국·러시아·이란 등 적성국의 위협 동향을 평가하면서 선거 항목이 쏙 빠졌다. 예측에 따른 결과물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통째로 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정보수장이 ‘선거 조작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언하면서 그간 미 정보당국이 별로로 묶어 관리해 온 선거 개입 증거의 일부이자 애초 연례위협보고서에 담길 모종의 내용을 우회적으로 암시한 게 아니겠냐는 합리적 해석이 나온다.
개버드 실장의 보고는 전자투표의 안전성에 관한 정가 안팎의 회의론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 속에 나온 것이어서 각별한 관심을 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 국장을 지낸 크리스 크렙스의 당시 선거 조작 개입 의혹에 대한 법무부의 강제 직권조사의 길을 열어젖히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하루 만에 나온 발언이다.
크렙스 전 국장은 2020년 미 대선이 역대 가장 안전한 선거였다며 부정선거 규명 의지를 천명한 트럼프 행정부를 지속해서 비난해 왔다. 정작 그가 몸담았던 CISA는 미국 선거 시스템이 중국을 비롯한 외세의 침투에 취약하다는 보고서를 발간해 눈길을 끌었다.
미 탐사보도 매체 ‘더게이트웨이푼딧(GP)’이 입수한 ‘2020 CISA 보고서’에 따르면 CISA는 선거 인프라(EI)의 위험성과 취약성을 평가한 결과, 무려 76%가 스피어 피싱(spear phishing·이메일 악성코드로 정보 탈취)에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사실상 한국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처럼 마음만 먹으면 뻥 뚫릴 수 있는 낮은 보안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국가정보원의 합동 보안점검에서 한국 선관위의 보안 수준은 100점 만점 중 31.5점을 받아 최악인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CISA는 중국의 침투에 주목했다. 트럼프 후보 당선 직후 작년 12월 국토안보부(DHS)와 공동으로 중국 공산당의 연합 사이버 군대가 구글·애플·버라이즌·컴캐스트 등 미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기업의 데이터센터·라우터·서버를 강제 점령하고 파괴하고 있다고 경각심을 일깨우며 대응 가이던스를 공개한 곳도 CISA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선거 진실성(election integrity)’ 회복 대책은 곳곳의 저항에 부딪히면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공화당의회위원회(NRCC) 만찬에서 △종이투표 복귀 △당일투표 △유권자 신분증·시민권 증명 등 폭넓은 선거 개혁안을 의회가 통과시킬 것을 당부했다.
그는 “(전자투표)기계 비용의 8%로 선거를 치르고도 정확하게 개표할 수 있다”며 “공화당 주지사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조작과 혼란의 기회를 없애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따져 물으며 주별로 조속히 시행에 들어갈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 같은 관점은 트럼프 행정부 각료들의 한결같은 인식이다. 미국 정부 차원의 지난 선거부정 규명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예고된 수순이라는 합리적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장관은 지난해 6월 “전자투표기를 없애야 한다”고 단계적 폐지를 주문한 뒤 “해커나 인공지능(AI)에 의한 해킹은 비록 작은 때일지라도 (리스크가) 크다”고 X에서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무소속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FK Jr.)가 푸에르토리코 선거에서 전자투표 관련 수백 건의 투표 부정행위에 대해 언급하자 이같이 댓글을 달아 주목받았다.
트럼프정부에서 연방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을 맡고 있는 RFK 주니어는 당시 “다행히 종이투표 기록이 남아 있어 문제를 발견해 집계 결과를 정정할 수 있었다”며 “종이투표 기록이 없는 선거구에선 어떻게 되겠나. 미국 시민은 자신이 행사한 표가 모두 집계되고 선거는 해킹될 수 없음을 알 필요가 있기에 선거에 대한 전산 개입을 피하기 위해선 종이투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의 반응이 흥미롭다.
인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 선거 부정 의혹 발언으로 한 차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이후 인도 내부적으로 선거 부정을 화두로 진통을 겪어 온 가운데 이번 개버드 DNI 실장의 발언으로 또 한 번 내홍에 빠진 뒤숭숭한 분위기를 인도 주류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인도 선관위(ECI)는 전자개표기가 해킹당하기 쉽다는 주장을 일축하며 전산 조작에 의한 결과 뒤집기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ECI 관계자는 “우리 전자개표기는 어떤 네트워크 또는 와이파이(wifi)에도 연결되지 않고 간단하고 정확한 계산기처럼 작동한다”며 “전자개표기는 인도 대법원과 여러 정당으로부터 여러 단계에 걸쳐 검증받았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의 인도 선거 개입 우려는 일찌감치 제기됐다. 지난해 3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중공이 인도의 4월 선거에 개입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보다 앞서 1월 대만에서 허위 정보 캠페인의 시험 가동을 마친 사실을 ‘마이크로소프트 위협 정보팀(MDTI)’ 보고서 형태로 공개한 바 있다.
중공이 국가자본과 인해전술을 앞세워 생존을 위한 파상공세의 일환으로 선거 개입을 시도한다는 우려는 과거 20년간 점차 실증적으로 증명돼 온 것으로 미 정보 커뮤니티는 평가한다. GP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레이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중국은 다른 주요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해킹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며 “실제 중국 해커의 수는 FBI 사이버 요원과 정보분석가의 수를 합친 것보다 최소 50배 많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한국만 유독 평온하다.
좌편향 논란에 끊임없이 휩싸여 온 국내 주류언론들은 12일 오후 10시 현재까지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실장의 충격적인 발언을 대부분 외면하고 있다.
한편 개버드 실장은 지난달 26일 미 워싱턴 DC 연방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전 세계 패권국 지위를 노리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적성국 가운데 ‘가장 능력을 갖춘 전략적 경쟁자(most capable strategic competitor)’로 평가된다”며 중국 공산당을 사실상 주적 개념으로 못 박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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