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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독일의 의원내각제 한계
프랑스와 독일이 의원내각제 특유의 진통을 겪는 모습이다. 의원내각제가 (직선제) 대통령중심제에 비해 ‘민의 왜곡’과 ‘기득권 유지 장기화’를 수월하게 한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프랑스 이원집정부제란 대통령제를 가미했을 뿐 의원내각제 성격이 강하다. 두 나라 모두 총선에서 1~2위를 차지한 정당이 집권에서 배제됐거나 그럴 조짐을 보여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월 총선 2위를 기록한 독일대안당(AfD)이 연합정부 협상에서 제외됐으며, 작년 여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국민연합(RN)엔 대권 후보 사법리스크를 겪게 됐다. 2차 (결선)투표 때 기존 정당들에 의한 ‘극우 몰이’로 역전되긴 했으나 RN은 자국중심주의의 거센 흐름을 증명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인 RN의 마린 르펜(56) 의원이 유럽의회 자금 유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2027년 출마가 불투명해지면서 오히려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 ‘신규 당원’도 대거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르펜의 3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많은 분들이 분노를 표출해 주셨다. 우리의 청원에 50만 명이 서명했으며 2만 명 이상이 새로 우리 당에 가입했다. 여러분의 지지가 매우 소중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프랑스 BFM TV에선 신규 당원 숫자를 검증할 수 없다면서도 “정말이라면 상당한 증가세”라고 인정했다. 작년 9월 RN의 젊은 스타 정치인 조르당 바르델라(29) 대표가 “당원 10만 명 돌파”를 장담한 바 있다.
지난달 31일 르펜에게 유럽의회 자금 410만 유로(약 71억 원)를 유용한 혐의로 징역 4년(전자팔찌 착용 상태 2년간 가택구금 실형)에 벌금 10만 유로(약 1억5000만 원),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이 선고됐다. 심지어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즉시 발효시키자 RN은 르펜의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민주주의 수호·마린 지지’ 구호를 내세운 청원 운동에 나섰다. 6일 오후 3시(현지시간) 파리 중심가에선 르펜 지지 시위도 열렸다. 앞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일론 머스크 등 정부 고위 인사들까지 르펜 편에서 논평하며 프랑스 현실을 꼬집었다.
◇ 독일 CUD·CSU 연합, 2위 AfD 빼고 3위 SPD와 연정 협상 중
독일에선 2월 총선 1위 정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집권 전부터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며 2022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반면 AfD는 2013년 창당 이래 지지율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음에도 주류 사회의 암묵적 전제인 ‘방화벽’(극우 정당과 불상종) 아래 연정 협상에서 제외됐다. 이 역시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층 인사들이 ‘민의 왜곡’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이다. 2월 뮌헨안보회의 때의 JD 밴스 부통령이나 더 일찍감치 유럽 정치·사회 문제에 발언해 온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머스크는 독일 내 대규모 공장을 가진 테슬라의 최고경영자로서 사업환경을 좌우할 만한 현지 정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며 적극 발언해 왔다.
AfD 지지율이 한 달 전보다 3％p 뛴 24％로 CDU·CSU 연합과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줄었다. 총선에서 20.8％ 표를 얻어 연방의회 제2위 다수당 지위를 차지했으며 이후에도 지지율 상승세다. ARD방송은 CDU·CSU 연합과 메르츠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 총선 이후 헌법을 개정하면서 재정정책 방향을 바꾼 탓일 것으로 분석하지만 문제는 훨씬 근본적인 데 있다. 유권자들이 이민·소수자·다양성·친환경에 따른 부담을 거부하게 됐으며 이런 표심을 AfD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3일(현지시간) 공개된 독일 ARD방송 조사 결과에 따르면 CDU·CSU 연합 지지율이 한 달 사이 3％p 하락한 26％로 집계됐다. 차기 총리를 준비 중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의 정치활동에 ‘만족한다’는 응답 비율 또한 5％p 줄어든 25％에 그쳤으며 ‘불만’ 답변이 70％에 달했다. 이들 CDU·CSU 연합을 흔히 ‘중도 보수’라 칭하지만 전반적으로 좌경화된 서유럽의 사상·언론 지형을 감안할 때, 특히 ‘미국 보수’가 보기엔 ‘(중도) 좌파’다.
◇ 프랑스 이원집정부제… 半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처럼 의원내각제란 의회 다수파가 권력의 핵심인, 의회 힘이 막강하면서 불안정하기 쉬운 정부 형태다. 더구나 다수 민의를 외면하기 쉽다. 전통적 토호 세력과 엘리트 집단이 연합해 기득권을 대대손손 이어가기 쉽다는 맹점과도 연결된다. 서유럽 국가들 대다수가 의원내각제인 것은 역사적 배경 때문이지 제도 자체의 우월함으로 보기 힘들다. 봉건제의 현대판인 의원내각제에 친숙한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지방분권적 봉건제 역사가 중앙집권 기간보다 압도적으로 길고 왕권에 대항한 귀족세력과 근대국가 형성기에 시민층이 합세해 절대왕권과 대결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는 집행부(행정부)가 대통령과 내각으로 돼 있으나 국정이 의회 중심으로 돌아간다. 7년 단임제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이며 의회 다수당 대표가 수상이 되어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 수행의 중심에 선다. 그래서 일명 ‘반(半)대통령제’다. 의회는 국민의회(직선)와 지방자치단체의 이익을 대표한 상원(간선) 양원제인데, 군소정당이 난립할 땐 정국 혼란을 면할 길 없다.
행정부·입법부의 상호 협조와 ‘권력의 1인 집중’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의원내각제 최대 장점이라지만 정국 불안정을 겪기 쉬우며 강력한 정책 추진이 어렵고 다수당 횡포 앞에 무력하다. 프랑스 제3공화국(1870~1940) 시대엔 70년간 무려 104회나 내각이 교체됐다. 집권당 의석수가 과반에 미달하면 다른 당과 연합해야 하며 각양각색의 비효율이 벌어진다. 이상적인 제도라면 서유럽 국가들의 후예인 미국에서 계승되지 않았을 리 없다. 의원내각제를 극복하고자 미국은 인류사 최초의 대통령제를 실험했고 그것이 대한민국에 재현됐다.
◇ 대통령중심제는 의원내각제를 극복한 제도
다만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대통령 국회해산권이 없고 의회의 탄핵소추권만 주어져 있어 의원내각제 요소가 우세한 대통령제다. ‘대통령 독재’보다 ‘의회 독재’ 위험성을 내재한 제도인 것이다. 1948년 제헌국회 당시 헌법 초안은 의원내각제 형태였다. 본회의 상정 하루 전 한민당 중진들과 이승만에 의해 대통령제로 변경되긴 하지만 의원내각제 틀을 가진 대통령제로 출발한 셈이다. 1952년 6·25전쟁 중 제2대 대선 때 발췌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됐다가 1960년 제3차 개헌으로 의원내각제로 잠깐 운영된 후 5.16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제가 유지되나 의원내각제로의 관성이 꾸준히 작동해 왔다.
근대 이전 약 500년 조선왕조가 중앙집권국가 같아 보이지만 애당초 ‘사대부의 국가’, 엘리트 중심의 나라로 디자인된 존재임을 무시할 수 없다. 조선은 왕권과 신권(臣權)이 절묘한 균형 속에 동시대 세계사에 이례적인 수명을 누렸으나 후기 들어 왕권이 귀족·토호화된 사대부 계층에 휘둘린 사례가 많다. 그런 역사적 체험의 압력에서 현재도 자유롭지 못하다. 권위적 리더십이 불가피한 건국과 산업화 시대엔 ‘제왕적 대통령제’일 수 있었으나 이미 옛말이다.
대한민국 현행 헌법은 의회 우위의 시스템으로 세팅됐기 때문에 ‘의회 독재’ 위험 요소가 훨씬 크다. 그것의 문제점에 마주한 상황에선 삼력분립과 안정성을 지향한 대통령중심제의 장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는 정책의 지속성 및 수행력에 최적화된 제도이며 주변 강대국의 위협,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 생존을 모색해야 할 나라로선 유리한 측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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