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 생각] 이광수 장편소설 '재생'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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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하늘, 억울한 심정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7-17 00:02:55

며칠 전부터 계속 마음속을 돌아다니는 것은 이광수의 장편소설 ‘재생’이다. 소설 공부는 참 어렵다. 집중해서 읽고 논문까지 쓴 작품도 시간이 흐르면 줄거리가 아득하다. 너무나 잘 알려진 ‘재생’, 생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길을 찾는 이 작품도, 그게, 사건 전개가 어떻게 되었더라, 한다.

이광수의 ‘재생’은 일본 작가 오자키 코요(尾崎紅葉)의 소설 ‘금색야차(金色夜叉·곤지키야샤)’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더 올라가 서양 작품으로 갈 수도 있다.

‘야차’는 악귀 같은 것을 뜻하는 인도 신화나 힌두교·불교에서 온 말로, ‘금색야차’는 황금, 곧 돈에 미친 악귀를 뜻한다.

이 ‘금색야차’는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 즉 ‘장한몽(長恨夢)’은 일제 때 작가 조중환(趙重桓)이 ‘금색야차’를 번안해 쓴 것이다.

‘번안’이란 원작이 있고, 이 원작의 이야기를 인물과 플롯은 이어받되 그것을 자기 나라 사정에 맞게 ‘적용’해서 다시 쓰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번안’은 있다.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전용(轉用·appropriation)’의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리하여, ‘장한몽’에 오면 ‘금색야차’의 ‘간이치’와 ‘미야’는 이수일과 심순애로 이름이 바뀐다. ‘도쿄’와 ‘아타미’를 오가는 이들의 사랑의 엇갈림도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도미야마’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마음이 움직여 사랑을 배신하고 마는 여자의 캐릭터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탐내는 것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돈이 없음에 한이 맺혀 ‘복수’를 다짐하고 종적을 감춰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간이치’의 전락 또한 이수일의 것으로 연결된다.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던가. 물같이 차가운 여자의 마음도 결국 회한에 이르고야 마는 것을.

이다음에 오는 것이 이광수의 ‘재생’이다. ‘재생’은 앞선 두 작품을 십분 고려하면서도 이광수만의 특색을 지녔다. 3·1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사랑하게 된 봉구와 순영. 가난한 봉구가 감옥에서 5년을 썩는 동안 일찍 세상에 나온 순영은 마음이 변해 백윤희라는 거부의 첩이 되고 만다. 이른바 당대의 유행, 여학생 첩이다.

감옥에서 나온, 순진해 빠진 봉구는 순영의 배신에 치를 떤다. 앞의 두 작품에서처럼 종적을 감춰 인천으로 건너가 미두점에 취직한다. 돈을 벌어 복수를 하자는 심산인 점도 같다. 그러나 봉구에게 주어진 운명은 가혹하다. 그가 취직한 미두점의 주인은 독립군 자금 내주기를 거부하다 아들에게 살해당하고, 봉구가 그 누명을 쓰고 만다.

사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억울하게 재판에 회부된 봉구가 현명한 판사의 판결로 누명을 벗고 풀려나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봉구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순영의 도움으로 풀려나기는 한다. 그러나 1심에서 봉구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진작에 읽고도 엉뚱하게 기대한 것과 달리 실제 작중에서는, 역시, 판사도 검사도 인정머리 하나 없는 이였다.

“그러나 재관관들은 그런 일에는 너무도 익숙하여 양미간 하나 찌푸리지 아니하고 더욱 씩씩한 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해 버리고는 만일 이 판결에 불복하거든 5일 이내로 공소할 수가 있다, 하는 말을 남기고, 인제는 나 할 일은 다하였다, 이 피고들을 갖다가 죽이든지 징역을 지우든지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하는 듯이, 재판장이 먼저 나가고 그 뒤를 따라 다른 재판관들도 다른 데 또 바쁜 볼일이 있다는 태도로,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린다. 오직 뚱뚱한 검사가, 이겼다, 하는 듯한 만족한 비웃음으로 피고와 방청인들을 한번 슬쩍 바라보고는 일부러 마루를 텅텅 울리고 나간다.”

그랬었지. 봉구가 이 대목에서 죄도 안 짓고 사형선고를 받았었지. 검사는 물론 판사도 사태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판사가 나오는 이야기를 분명 어디선가 읽은 듯도 하건만. 그래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갇힌 사람이 죽음을 모면하고 자유를 찾는 소설, 말이다.

오늘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저녁에 큰 집회가 있다 했는데, 몸은 다른 곳으로 향한 채 마음만을 보낸다. 종일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저녁이 다 되어서야 시원스럽지도 않은 ‘찔끔비’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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