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7º
습도 65%
춘천 14º
습도 95%
)
25일 베네수엘라 총선 및 지방선거가 여권 압승으로 끝났다. 10%대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답게 주요 외신들을 탄 사진들 속 투표소엔 경비를 선 군인과 고양이·강아지가 보일 뿐이다. 유권자보다 군인이 많은 곳도 있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현지 선거관리위원회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통합사회주의당(PSUV)이 국회의원 285명을 뽑는 총선에서 82.68% 득표로 승리했으며 동시 진행된 지방선거에선 24개 주지사직 중 23개를 휩쓸었다고 발표했다.
투표 마감 직후 선관위는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인명부의 2150만7162명 가운데 42.63%가 투표에 참여했다”며 “2020년 30.46%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고 주장했다. 작년 7월 대선 이후 유권자들의 선거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마두로 정권 심판 분위기였던 작년 대선 때 출구조사에서 야권 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의 승리가 예견됐지만 선관위는 개표 완료 전에 현직 마두로의 승리를 공식화했다. 국내 여론이 들끓고 국제사회도 의문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선관위 손을 들어 줬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병사 후 그의 기조를 12년간 계승한 마두로에겐 1월 새로운 6년 임기가 개시됐다. 18년 집권이 보장된 셈이다. 빈곤국으로 추락한 국내 상황을 늘 “제국주의 국가의 제재 탓”으로 돌려 온 그는 미국에 맞선 정치 아이콘이기도 하다.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입법부·사법부·선관위·군·경찰·검찰 등 주요 조직과 집단의 의사결정권자를 자신의 충성파로 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권 지도부인 ‘코만도 콘 베네수엘라’에 이번 선거 투표율을 12.56%로 집계했다. AFP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등이 앞장선 ‘투표 보이콧’ 기류가 일찌감치 형성돼 있었다며 ‘여당 압승’을 예견된 수순으로 분석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마두로는 투표 이튿날(26일) 인스타그램에 “차비스모(차베스 이름을 딴 좌파 포퓰리즘)의 힘을 입증한 것”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라고 자축했다.
반정부 성향 매체인 엘나시오날에선 “집권당 세력에 장악된” 선거가 ‘부정확한 투표율’과 ‘깜깜이 개표’로 재차 선거공정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선거 전 유권자 2100만 명 중 16%만이 ‘투표하겠다’고 답한 현지 여론조사업체 델포스 조사 결과, 이어 ‘12%를 조금 넘긴 투표율’이라는 또 다른 여론조사업체(메가아날리시스) 발표 후 우루티아가 엑스(X)에 입장을 밝혔다. 작년 대선 후 스페인 망명 중인 그는 선거보이콧이야말로 “변화와 존엄성, 미래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다는 조용하지만 울림 있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 선거 양상을 계기로 남미의 ‘또 다른 일당 독주 체제’ 엘살바도르가 새삼 조명받게 됐다. 양국 정상을 ‘극과 극 대척점의 정치이념이면서 국정운영 방식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식의 국내외 주요 언론 기사가 많이 보이지만 이들을 그저 닮은꼴 독재자 취급하는 게 타당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양자 사이엔 다른 점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좌파 독재’ ‘우파 독재’가 각각 국가 발전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따져 봐야 한다.
국명이 ‘작은 베네치아’에서 왔을 만큼 베네수엘라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비유될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 높았다. 천혜의 환경을 가진 자원 부국이자 한때 국제 미인대회 우승자를 다수 배출하던 나라였으나 지난 십수년 이래 좌파 포퓰리즘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게 됐다. 세계1위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미국의 셰일 등으로 에너지 지정학이 크게 바뀌며 유가가 하락하자 당장 고전하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 베네수엘라 GDP 약 80%가 감소한 것은 석유에만 의존한 경제였음을 말해준다.
분배를 앞세운 차베스주의 역시 상황을 빠르게 악화시킨 이유다. 2018~2019년 시점에선 물가상승률이 100만%에 달한 적도 있다. 전체 인구(2830만 명)의 25% 이상인 약 800만이 해외 이주했으며 사회 인프라 전반이 붕괴했다. 범죄율마저 세계 최악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의 객관적 원인으로 지목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여전히 추앙의 대상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비슷한 역할을 한 영부인이자 정치인 에바 페론(1919~1952)이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로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흔히 지적된다.
한편 엘살바도르의 자칭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독재자”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2022년~2024년 사이 갱단 범죄 급감을 이끌어 내 과거 세계 최악이던 살인율이 라틴아메리카 최저로 떨어졌다(작년 기준 10만 명 당 1.89). 작년 GDP 성장률이 2.6%이며 물가 또한 안정적인 편이다. 경제 회복세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외국인투자유치 시도, 관광업 회복세 등에 기대감이 쏠린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밀착한 결과가 어떻게 국익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작년 11월 미 국무부는 “지난 3년간 갱단활동이 크게 감소해 폭력범죄·살인 사건이 줄었다”며 엘살바도르 안전등급을 3등급 ‘여행 재고’에서 2등급 ‘주의 강화’로 한 차례 올렸다. 지난달엔 1등급이 됐다. 한국·일본·아이슬란드 등 치안 좋기로 유명한나라들 수준에 해당한다. 폭동 등이 잦아진 프랑스·영국보다 안전한 나라로 간주된 것이다. 이는 부켈레가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의 극찬과 호감을 이끌어낸 시기와 맞물린다. 트럼프 정부가 불법이민자 추방에 속도를 내고자 ‘적성국 국민법’을 활용해 중남미 기반 범죄조직 연관 이민자 수백 명을 엘살바도르로 추방할 때 부켈레는 적극 협조했다.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국운을 건 모양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6
좋아요1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