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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천원칭(陳文淸)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만나 우의를 다졌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쇼이구 서기는 이 자리를 빌어 양국관계를 “강대국 관계의 모범” “견고한 기반 위에서 고유의 가치를 지닌 채 외부의 압력을 견딜 내구적 관계”로 묘사하며 “포괄적 파트너십과 전략적 협력이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한 역대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천 서기 역시 “전략적 파트너십과 상호작용에 기반한 강대국 관계의 모범”으로 양국 관계를 짚었고 “주권·안보·이익 개발을 저해하려는 시도에 맞서 함께 싸운다”며 동지적 관계임을 적극 부각시켰다. 양국 협력을 “국제관계 민주화의 새로운 동력”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의 사법·공안·정보기관을 총괄하는 핵심 직위가 정법위 서기다. 국가 시스템 전반을 초국가·초헌법적 공산당이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비해 러시아에서 공산당은 현 정권에 도전하기 어려운 일개 정당에 불과하다.
두 사람은 이날 나란히 러시아산 드론·무기·전투장비 등을 선보인 박람회를 참관했다. 작년 11월엔 쇼이구가 중국을 방문해 제15회 중국국제항공우주박람회(주하이 에어쇼)를 둘러봤었다. 이번 러·중 고위급 회담은 제13회 안보문제 담당 국제고위대표 회의(28~29)가 계기였다. 쇼이구 주재로 진행되는 이 회의엔 중국·북한 등 100여개국 125개 이상 대표단과 14개 국제기구가 참석한다. 쇼이구와 리창대 북한 국가보위상 회담 또한 예정돼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래 국제 고립 속에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다. 유사 이래 양국의 필요가 지금 만큼 맞아떨어진 적이 없다. 다만 영원할 것으로 보기엔 역사적 구원(舊怨)이 깊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엔 시베리아 동부와 중앙아시아·몽골을 둘러싼 패권경쟁의 유산이 존재하며, 러시아가 고전 중인 국제관계를 기회삼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이에 대한 러시아의 경계심이 수면 아래 팽팽하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대한 불만과 권위주의 체제 방어를 위해 유엔·브릭스(BRICS)·상하이협력기구(SCO) 등 다자 무대에서 공조를 강화해 왔다.
러시아의 자원 공급, 중국의 기술·재정 지원을 통해 당분간 상호 보완적 관계가 유지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론 갈등 증대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게 일반적이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 북극항로 경쟁, 러시아 극동인구 감소 등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불러올 수 있다. ‘중국 의존도 증대’를 전망하거나 우려하는 전문가로 러 외교·안보 전략가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러시아사 학자인 스티븐 코트킨 프린스턴대 교수, 러 국영방송 언론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등이 있다.
러시아인들 심저에서 ‘중국=가해자·약탈자’ 이미지가 생겨난 역사적 연원도 뿌리 깊다. 러시아어로 중국을 ‘키타이’라 한다는 게 대표적 사례다. 키타이(중국)의 어원 거란(契丹·Khitan)은 중국대륙 북방의 유목민족을 말한다. 이들이 세운 요(遼 916~1125)나라가 한때 대륙 북부를 지배하며 러시아 남부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인들이 처음 만난 중국은 거란족이었던 것이다. 세계인 대다수가 차이나·친·히나·키나 등 대륙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Qin)나라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중국을 칭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른바 ‘타타르의 멍에’라는 것도 있다. ‘타타르’란 러시아인이 몽골·튀르크 유목민을 통칭할 때 쓴다. 250년간(1240년대~1480년) 슬라브계 공국들을 몽골계 킵차크한국이 지배한 것을 말한다. 네르친스크조약(1689) 때 국경을 설정했지만 긴장과 마찰이 계속됐다. 19세기 중엽 청 왕조가 서구 열강에 밀리자 러시아는 이를 틈타 연해주와 아무르강 유역을 차지해 오늘날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했고 20세기 냉전시기 내내 공산 진영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 1960년엔 국경 문제로 교전도 벌인다.
하지만 탈냉전시대 들어 러·중 관계는 ‘상호 내정불간섭’ ‘전략적 협력’으로 정리됐다(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 중국이 세계패권 의지를 드러낸 시진핑 정권 이후 러시아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2013년 시진핑이 러시아를 “중요한 전략적 협력 파트너국 중 하나”로 짚자,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중 협력은 아시아 안정을 위한 핵심 축”이라고 화답하며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진입했다. 특히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으로 서방 제재에 직면하면서 서로 급속히 접근한다.
양국은 “서방의 이중잣대와 내정간섭에 공동 대응”한다며 자신들 관계를 “세계 정치의 안정장치”로 내세우더니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을 계기로 드디어 “제한 없는 우정”을 선언했다. 이후 “가장 신뢰할 만한 동반자 중국” “전면적·구조적 협력” 등의 표현을 주고받았다. 갈수록 ‘다극 질서’ ‘패권주의 반대’ 등이 빠지지 않으면서 미국 중심 세계질서를 노골적으로 반박하는 흐름으로 진화했다. 2025년 들어선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축’을 자처한다. 이달 초 전승기념일을 맞아 만난 중·러 정상은 “세계 주요국으로서 특별한 책임”을 말하며 “역사상 최고 수준의 양국관계”를 거듭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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