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사람이 1년에 두 번 목숨을 걸고(いのちをかけて, 이노찌오 가케데) 참여하는 행사가 있다. 벚꽃구경 하나미(花見, はなみ)와 불꽃놀이 하나비(花火, はなび)다.
벚꽃(さくら, 사쿠라)은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다. 불꽃은 ‘꽃처럼 피어나는 불’이다. 두 가지 모두 어휘에 꽃이 들어간다. 벚꽃과 불꽃에 일본인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본인은 왜 벚꽃과 불꽃에 열광하는가. 해마다 3월이 되면 벚꽃이 언제 개화한다는 일기예보에 대다수 일본 사람은 귀(みみ, 미미)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날짜와 약속 장소를 정한다. 정해진 날짜에 누군가 가서 미리 자리를 잡는다. 맥주(ビル, 비루)와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준비한다. 당일 몰려든 사람은 가지마다 수북하게 달린 벚꽃을 보며 취하거나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벚꽃이 피는 기간은 2주 정도에 불과하다. 여름을 지나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져 거리에 뒹굴면 삭막하고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여기에 눈까지 내린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빼고는 황폐하기 그지없다. 겨울이 지나 봄이 돼 개나리라도 피면 사람은 기지개를 켠다. 3월 중순 경부터 피는 벚꽃은 한꺼번에 피고 비와 바람을 맞아 허무하게 진다.
1년에 단 한 번 2주 정도만 경험할 수 있다는 벚꽃 구경에 일본인은 왜 열광하는가. 짧은 순간에 대지를 밝히듯 활짝 폈다가 한 순간에 져버리는 벚꽃의 특성이 일본인의 인생관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는 벚꽃처럼 죽는 것을 아름답다고 칭송한다. 어차피 죽는 것, 아름답게 죽자는 것이다. 일본인은 목숨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 의리나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처럼 버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미가제 특공대원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적진의 항공모함에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를 외치며 초개와 같이 몸을 던졌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말썽을 빚었던 고이즈미 전 총리는 퇴임 후 이런 말을 했다. “벚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한꺼번에 우수수 져버리기 때문이다. 늘 피어있으면 그게 아름답겠는가”
하나미(花見, 꽃구경)처럼 일본인을 들뜨게 하는 행사가 하나비(花火)라고 하는 불꽃놀이다. 더운 여름 유카타(浴衣, ゆかた, 목욕한 뒤나 여름철에 입는 무명 홑옷)를 입은 남녀가 게다(げた, 나막신)를 신고 돌아다니는 것을 길거리에서 목격하게 된다면 그날은 분명히 불꽃놀이가 열리는 날이다.
이 행렬에는 남녀노소, 내외국인이 따로 없다. 이때도 먹을거리와 시원한 맥주, 돗자리는 필수품이다. 사랑하는 연인(こいびと, 고이비토)이 있다면 무조건 함께 즐겨야 하는 빅 이벤트다.
일본의 불꽃놀이가 대단한 것은 여러 군데서 열리는 것도 있지만 한 번 불꽃놀이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 수가 1만 발에서 2만 발이나 되기 때문이다. 불꽃이 터지는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의미에서 ‘불꽃쇼’라고 이름 붙일 만 하다.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스미다가와(스미다강) 불꽃놀이는 TV에서 생중계까지 할 정도다. 100만명 가까이 행락객이 몰린다.
하나비도 하나미처럼 자리다툼이 치열해 목이 좋은 곳은 전날이나 당일 아침 일찍부터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한 시간 반 가량의 불꽃놀이 구경을 위해 하루를 꼬박 바치는 것이다.
하나미(꽃구경)과 하나비(불꽃놀이)는 봄과 여름을 대표하는 일본의 볼거리이지만 둘 다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일 년에 단 한 번만 즐길 수 있다는 애절함은 단 하나의 기술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일본의 장인정신(ものづくり, 모노츠쿠리)과 언뜻 닮아 보인다.
하나미와 하나비 문화에는 인생을 굵고 짧게 산다, 의리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다는 일본인의 인생관이 담겨있다. 어찌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와 일본 국민의 사고방식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열심(熱心)히 하자는 표현을 많이 쓴다.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것이 대표적인 문장이다. 뜨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에 임하자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열심히’라는 어휘는 ‘いっしょうけんめい, 잇쇼켄메이’라고 한다. 잇쇼켄메이를 한자로 쓰면 일생현명(一生懸命)이다. ‘한평생 목숨을 걸고 모든 일에 임하자’는 의미다.
뜨거운 마음으로 임하자는 우리나라 민족성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모든 일에 임하자는 일본의 민족성이 각각 어떤 결과를 낳을까. 아마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의리와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일본, 모든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임하는 일본의 민족성이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밑바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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