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8º
습도 65%
청주 28º
습도 75%
)
올해 들어 중국 비자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은 편리함일 뿐인가.
안후이성은 장쑤성과 함께 중국 동부 지역에 속한다.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거대 도시권)라 할 상하이·난징도 이 지역에 속한다. 안후이 성은 옛날 신라와 관계가 깊어 김교각 스님이 수행하신 구화산이 거기 있다고 했다.
난징으로 들어가 난징으로 빠져 나오는 것이 정한 여정이다. 가기는 가지만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가서는 ‘이효석과 하얼빈’으로 발표를 하기로 한다.
텐진·베이징·후허하오터·하얼빈·창춘·단동·시안·뤼순·연길·상하이·항조우·윈난 그리고 청두. 헤아려 보니, 그 사이에 중국 땅을 이곳저곳 제법 많이 다녔다. 그래도 중국은 아직 내게 친숙하지 못하다. 처음부터 말을 제대로 못 익혔고, 콘사이스 국어사전 옆에 쓰인 한자만 믿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었다.
1996년 9월 초의 인천-텐진 간 페리호로 1박2일 걸려 건너간 게 나의 첫 해외 여행이자 중국행이었다. 선상 비자(On-board visa), 조선족 마이크로 버스, 제우스 신이 번개창을 내리꽂던 고속도로, 조선족 민박 아파트, 천안문, 팽배한 자본주의를 풍자하던 어느 화랑, 골동품을 숱하게 팔던 리우리창, 그리고 라오서 찻집.
하얼빈은 이효석의 추억이 있어 좋았다. 거기 러시아 사람들이 개척한 기타이스카야 거리, 오늘날의 중앙대가 도로는 작은 사각돌들을 깔아 놓은 석판로였고 이효석이 머물렀다는 모데른 호텔, 쑹화강의 수양버들과 꽃배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청두는 옛날 촉나라 수도였고 쓰촨성의 성도다. 오래된 도시답게 고풍스럽고 사원이 있고 산간 음식이 담백하고 또 사천요리 훠궈가 기억에 선명하다. 쓰촨 하면 또,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쓰촨의 선인들(Der gute Mensch von Sezuan)’이 생각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하게 사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이 서사극(소외극)은 현대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난징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빨라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거기서 벙부까지 마중 나온 분의 차로 움직인다. 공항도로는 한 달 전 칭다오에서처럼 무척이나 깨끗하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학술 세미나 주최 측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최근 중국은 긴장된 분위기 탓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타이완에서 유학한 선생님께서 요즘 중국 경제가 좋지 않은 상태라 알려 주신다.
식당에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주최하는 대학 학장님이 나와 같은 성씨라는 것. 나의 성씨는 한국에서 아주 흔한 편은 아니어서 1백 명에 한 사람도 있기 어려운데, 멀리 중국 땅에서 친족을 만난 것이다.
온양 방씨는 본디 상주 방씨다. 중국 당나라 때 한림학사로 황제의 명을 받고 신라로 온 분이 장씨와 결혼해 상주에 정착했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해도 친족지간이라 하니 확실히 반갑고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두 사람이 귀가 닮았다고 해서 좌중이 모두 웃었다.
하루 종일 발표 토론에, 학교 첨단 시설들을 답사하고 나자 녹초가 되었고, 다음 날 황산 밑 툰시라는 곳으로 가서 고풍스러운 거리들을 보고, 돌도장 새긴 것을 사고, 황산 방문 기념 자석을 미리 산다. 늦게들 자고 천하의 명산이라는 황산 ‘공략’을 위해 우리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모인다.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를 탈 때까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옥병루’에서 내려 ‘광명전’까지, 37도 날씨에 5백m를 가파르게 타는데, 지난 7개월 사이에 체력이 얼마나 고갈되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산은 좋다. 이 황산을 보면 달리 ‘5악’을 볼 필요가 없을 지경이라는 바로 그 산이다. 일망무제, 황산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인 광명전에 간신히 아픈 다리를 끌고 오르자 세속 세상을 잠시 잊어 보자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 해 내내 겨울 들어서는 더욱이 산을 잊고 세속에 매달렸던 것이다.
황산서역으로 해서 난징까지 오는데, 고속기차 중 가장 빠른 G열차는 순식간이다. 벌써, 밤. 공자를 기리는 사당 근처에서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으나 세속 세상 가득한 인파 속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멀리 떠나서도 나는 한 번도 고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잊지 못한 것이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