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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이민자 단속 작전에 맞선 시위가 사흘째 격화하자 미군이 9일(현지시간) 해병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북부사령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성명을 게시해 “해병대 보병 대대를 활성화했다”며 “제1해병사단 산하 제7해병연대 제2대대의 해병대원 약 700명이 LA지역에서 연방 인력과 재산을 보호 중인 ‘태스크포스51’ 휘하 ‘타이틀10’ 병력과 원활하게 통합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300명을 현지에 배치했으며 앞서 주방위군 2000명 투입이 가능하도록 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상태다.
‘타이틀10’이란 주(州)정부가 요청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주방위군이나 연방 병력을 주에 배치할 권한을 명시한 연방법을 의미한다. 이런 대통령 권한에 의거해 LA 시위 대응을 수행 중인 태스크포스51에 해병대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취지다. 미 대통령이 주지사의 요청 없이 주방위군을 동원한 것은 1965년 민권운동 시위대를 보호하고자 내린 린드 존슨 대통령 결정 이후 처음이다. 이에 민주당 대권 주자로 거론돼 온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트럼프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트럼프의 먹잇감이냐, 대권 주자로 우뚝 서느냐의 갈림길’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뉴섬은 MS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책을 비난하며 국경·이민자 문제 관련 총책인 톰 호먼를 향해 “날 체포해 보라” 도발했다. 호먼이 “아무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누구든 불법이민자 대처를 방해하면 체포될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엘리트 이미지가 강하며 민주당 내 리버럴의 대표 인물인 뉴섬이 최근 트럼프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을 끌어안고자 트럼프 측근 스티븐 배넌을 자신의 팟캐스트에 초대하는 등 일견 색다른 행보를 보였으나 이번 일로 분명한 기로에 서게 됐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뉴섬은 부지사(2004~2011)·LA시장(2011~2019)을 거쳐 2018년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2022년 연임에 성공했다. 다만 지난 20여 년 그의 정치 이력이 캘리포니아의 뚜렷한 쇠락기와 고스란히 겹쳐 엇갈린 평가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중남미와 국경을 접한 캘리포니아가 불법이민자 천국이 되는 과정과 민주당 텃밭이 된 과정은 일치한다. 2010년부터 피해액 950달러(약 130만 원) 이하 절도를 경범죄로 취급(2014년 법제화)하면서 치안 불안 역시 심해졌다. 2023년 8월 사건처럼 대낮 들이닥친 강도들에게 대형 백화점이 털리는 일마저 속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기후·자연 등 천혜의 환경에 실리콘밸리·할리우드·명문대학 등을 보유한, 일개 주만으로 ‘지구촌 제5대 경제체’인 캘리포니아였으나 근년 가시화된 변화는 매우 충격적이다. NTDTV가 제작해 작년 유튜브에 공개한 다큐멘터리 ‘낙원 캘리포니아를 떠난 이유’에 따르면 주정부의 고율 세금, 도로·교통·치안·교육 등 공공서비스 악화, 도시 곳곳에 펼쳐진 노숙자촌, 마약·범죄율 증가 속에 보통 시민들, 특히 중소 자영업자들 곤경이 생생하다. 이들은 (무인)세탁소나 편의점 등 자신들의 생계인 소규모 사업장이 ‘처벌도 못할 경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고충을 증언한다.
한편 JD밴스 부통령은 이번 시위에 참여한 멕시코 이민자 일부가 멕시코 국기를 흔들자 “외국 국기를 든 반란군이 이민법 집행관을 공격한다”고 비판했으며, 폭스뉴스에선 불타는 자동차와 타이어 장면을 반복 송출했다. 이런 가운데 뉴섬 주지사 메시지가 LA타임스에 실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러 분노를 자극해 반응을 끌어내려 한다. 자기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도록 폭력을 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광경을 보여주지 말라”고 호소한 내용이다.
6일 ICE(이민세관단속국)가 서부 LA지역 대규모 단속 때 약 44명이 체포되면서 시위로 비화했다. 200~1000명 규모의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채 벽돌·콘크리트를 던지며 경찰과 충돌했고 7~8일 파라몬트 지역에선 격렬한 대치가 있었다. 일부 시위대가 ICE에 벽돌·화염병 투척. 언론 보도진도 고무탄 등으로 호주 기자와 영국 사진기자 등이 부상을 입었다. 일련의 사태가 8일 트럼프로 하여금 주방위군과 해병대 투입을 결심하게 만든 셈인데, 뉴섬 주지사·캐런 배스 LA시장은 “불법이자 위헌”이라며 소송을 예고했다.
현지를 방문한 트럼프 장남의 농담성 발언 또한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진영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을 패러디한 그의 “옥상의 한국인들(Rooftop Koreans)을 다시 위대하게” 표현은 한인 사회에겐 30여년 전 생긴 트라우마를 건드린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한인 단체의 공식 성명이 나오진 않았으나 “경솔하다” 등 부정적인 소감을 토로한 사례가 전해졌다. 1992년 4월29월~5월4일 LA 흑인 폭동 때 방화·약탈 타킷이 된 한인들은 주·연방 정부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해 대처해야 했다.
이 사태는 미국 한인 사회에 심대한 물적·정신적 상처를 입혔다. 약 2300개 한인 업소(전체 피해 상점 중 약 45%)가 방화 및 약탈 당해 피해 총액이 약 3억~4억 달러로 추정됐다. 무엇보다 이민 와서 성실히 세금 내며 살았음에도 방치됐다는 절망감이 극심했다. 다만 한인 남성들 거의 전부가 병역을 필한 상태인데다 월남전 참전 용사까지 섞여 있던 시절이었던 만큼 옥상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자경단 모습이 미국 사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 장남이 그런 역사에 경탄을 표한 것임에도 불쾌하다는 반응이 우선한 것은 LA한인회(KAFLA)가 민주당 리버럴 성향으로 분류돼 온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퓨리서치 작년 자료엔 미국 내 한인 유권자의 약 67%가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민주당 성향이다. 공화당 쪽이 28%, 그 외 나머지는 무당파다. 지난 30여 년 ‘정치 참여 없으면 국가 보호도 못 받는다’ 인식이 한인 유권자 등록·투표 참여율을 크게 높였으며 2세·3세 한인 정치인 배출로 이어졌다. 2025년 기준 미국 전역에 약 110명의 한국계 공직자(연방·주·지방)가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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