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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강남서 즐기는 노포 감성… 서초 올레길 맛집
치킨과 항아리수제비는 필수 ‘한신치킨호프’
추억 소환하는 프라이드치킨 맛집 ‘오공구이’
더울 땐 산책 후 시원하게 ‘양양메밀막국수’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8 06:30:34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조선시대 사당인 청권사(淸權祠)가 나온다. 청권사는 효령대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효령대군은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4대 임금 세종의 둘째 형이다.
 
청권이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 주나라에서 왔다. 주나라 태왕이 첫째 아들 태백과 둘째 아들 우중을 제치고 셋째 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두 형은 부왕의 뜻을 받들어 왕위를 사양했다. 후에 공자는 학문과 재덕을 숨기면서 왕위를 겸손하게 양보한 미덕을 높이 칭송하면서 태백은 지덕이요 우중은 청권이라 칭했다. 우중은 숨어 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내면적 처신은 깨끗함(淸道)에 부합했고 의식적으로 몸을 함부로 한 것은 권도(權道)에 부합했다는 데서 청(淸)과 권(權)을 따왔다.
 
조선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과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 셋째 아들 충령대군에게 왕위를 사양했으니 이를 주나라 태왕의 사례에 빗대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로 칭하고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라고 칭했다.
 
청권사는 1736년 왕명으로 경기감영에서 지어서 다음 해 영조 13년에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사당이 만들어졌고 1789년에 사당의 현판이 내려졌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정신에 해당하는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에 해당하는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당은 조상의 넋인 혼을 모시기 위함이고 분묘는 시신의 백을 모시기 위해 만들었다.
 
사당은 죽은 이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조상 숭배를 위한 건축적 공간이다. 사대부 집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이자 정신적 중심처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청권사 역시 사당에는 들어갈 수 없고 길게 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효령대군 묘소는 볼 수 있다.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사당 ‘청권사’
 
 
▲ 이보 묘역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우면산이 보인다.[사진=한덕택]
 
청권사 뒤쪽은 서리풀공원과 맞닿아 있다. 서리풀공원은 둘레길이 조성돼 있어서 지역민들 산책로로 인기가 많다. 이 지역은 1970년대부터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주민들 접근이 어려웠다. 2015년 군부대 이전과 함께 2019년 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됐다.
 
서리풀공원 산책로는 서초 올레길이라고도 불린다. 군부대 주둔 덕에 서리풀공원은 사람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자연생태가 잘 보전된 곳이다. 서리풀공원 사이로 반포로가 지나가면서 산책로가 단절돼 있었으나 2009년에 누에 다리가 생기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 됐다.
 
산책로는 지하철 3·7·9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센트럴시티 육교를 건너 아파트가 보이는 숲길로 들어서면 출발점 이정표가 나온다. 산책로는 청권사가 위치한 방배동 방배역까지 서초구 중심부를 가로지른다. 편의를 위해 빠른 길과 여유롭게 가는 길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약 4km 산책로는 가파르지 않고 대부분 완만한 코스여서 남녀노소 모두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한강을, 남쪽으로는 우면산을 조망할 수 있다. 필자도 걸어 봤는데 걷기를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다소 싱거운 길이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자연 속을 걷는 기분은 매우 여유롭고 상쾌했다. 강북 지역을 주로 걸었던 터라 강남 산책길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이 때문에 반포와 방배 쪽 식당을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
 
동네 맛집서 전국구 맛집으로 인기
 
 
▲ 한신치킨호프의 프라이드치킨·양념치킨·항아리수제비·계란말이. 필자 제공
 
방배동 쪽에서 고속버스터미널 쪽으로 산책길을 잡으면 산책을 마치고 어김없이 한신치킨호프·이모네포차·서래오뎅·오공구이 같은 포장마차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을 찾게 된다. 메뉴가 다양하고 무엇보다 노포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노포 감성은 산책로에서 느끼는 감성과는 또 다른 ‘갬성’이다. 70년대 말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착공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은 강북의 감성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강남 노포의 감성은 소중하고 필자는 이런 곳을 애정한다.
 
잠원동 반원초등학교와 모서리를 맞대고 있는 반원상가에는 동네 주민의 찐맛집 ‘한신치킨호프’가 있다. 반원칼국수로도 검색된다. 아마도 반원칼국수를 한신치킨호프에서 인수해서 점포를 넓힌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언제부터 소문이 났는지 이제는 동네 주민들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핫플이 됐다. 한겨울에는 길거리 포장마차처럼 주황색 비닐 커버를 젖히고 들어서는 포차 감성이 충만한 곳이다.
 
주력 메뉴는 바삭한 프라이드치킨과 항아리수제비다. 필자 역시 갈 때마다 두 가지 메뉴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미지옥 같은 치명적 메뉴다. 바지락칼국수·얼큰대합수제비·돈까스 등 식사류는 물론 조개탕·알탕·곱창전골·오삼볶음·키조개무침·골뱅이무침 등 묵직한 안주류가 메뉴판에 그득하다. 심지어 회 종류도 파는 등 실내포차계의 맏형 같은 곳이다. 가격도 반포치곤 가성비가 좋아 손님들이 북적이는 이유다.
 
초기에는 대로변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동네 상권이라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 층이 상당수 좌석을 점하고 있다. 그래도 주말에는 인근 아파트 단지 가족들 모습도 적잖게 눈에 띈다. 멸치 육수의 감칠맛을 한껏 담은 칼칼한 항아리수제비의 중독성은 이 식당의 매력을 대변한다. 꼭 한 그릇 해야 하는 필수 주문 메뉴다.
 
간간한 치킨 튀김옷 자체가 고급 안주
 
 
▲ 오공구이의 프라이드치킨·골뱅이무침·명란 계란말이와 독특한 숫자 간판. 필자 제공
 
프라이드치킨이라면 뒤질 수 없는 곳이 반포쇼핑타운 4동 지하에 있는 ‘오공구이’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에 도열해 있는 반포쇼핑타운은 1동부터 8동까지 대규모 상가다. 반포센트럴자이·반포르엘 등 재개발된 아파트와 마지막 노른자로 불리는 반포 한신 4차 아파트 등을 등에 업고 있는 강남 개발의 상징이다.
 
오공구이는 외부 간판에 ‘오뎅사랑 구이사랑 5092’라고 달아 놨다. 오공구이란 간판명을 찾다가는 지나칠 수 있다. 오공구이는 오뎅을 굽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뎅탕과 구이 안주를 내놓는다는 의미다. 노가리·짝태 등 생선포 구이요리와 꼬치오뎅탕이 메뉴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곳의 주력 메뉴는 프라이드치킨과 골뱅이무침이다.
 
둘 중에서도 골뱅이무침을 찾는 손님이 많다. 이는 주방 찬모의 손맛이 좋다는 의미다. 프라이드치킨은 옛날 맛을 느끼게 한다. 두툼한 튀김옷은 그 차체만으로도 훌륭한 맛을 낸다. 튀김옷과 촉촉한 닭살의 씹히는 조화가 좋다. 튀김옷의 간간한 양념 맛이 끊임없이 손길을 유혹한다. 두 명이 한 마리를 먹기가 쉽지 않은 요즘, 오랜만에 접시를 비웠다. 그만큼 치킨 맛이 입에 착 감기고 생맥주를 부른다.
 
여름 산책길 뒤풀이는 시원한 메밀국수
 
▲ 양양메밀막국수의 메밀막국수·동치미막국수·회메밀막국수·수육. 필자 제공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쪽에서 산책길을 올라 방배역 쪽으로 내려오면 내친 김에 내방역 근처 함지박사거리까지 걸어가 ‘양양메밀막국수’엘 간다. 방배동에 오면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100% 메밀을 손반죽으로 뭉쳐 압출해서 면을 뽑는다. 2018년부터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에 선정되면서 여름철이면 대기 줄을 길게 세우는 곳이다.
 
100% 순수 메밀만을 사용하고 주문을 받은 후에 제면 작업을 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양양메밀막국수의 비결이다. 메밀 막국수 식당을 운영해 온 이유도 대표 자신이 막국수를 너무 좋아해서라고 한다.
 
이 집은 비빔 막국수가 없고 회메밀막국수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메밀막국수는 거칠고 투박한 게 야성미(味)가 가득하다. 회메밀막국수는 메밀 막국수 위에 명태 무침이 고명으로 올라간 것으로 이 식당의 대표 메뉴다. 김치와 메밀의 조화가 좋은 메밀전과 김치전 등 전 종류와 탄탄한 맛의 수육 등을 곁들일 수 있다.
 
서초 올레길 양 끝단은 지하철 역세권인 동시에 ‘먹세권’으로 맛집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70년대부터 개발된 신흥도시 강남 속에서 노포로 사랑받는 곳이 뻘 속 진주처럼 곳곳에 숨어 있다. 가벼운 산책길 끝 트렌디한 강남 감성 속에 오랜 손때 자국이 남아 있을 듯한 노포 감성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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