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20년 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었다.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연대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선언적으로 명시된 헌법 조문일 뿐이라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기각해 없던 일이 되었지만, 그 이후 대통령 탄핵은 다수 의석을 확보한 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당시 탄핵 관련 언론 보도에 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의 탄핵 가결 직후 시작된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의 격렬한 탄핵 반대 보도들은 ‘편파적’이란 용어만으로는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였다. 단순히 편파보도에 그치지 않고 연일 탄핵 관련 특집 프로그램들이 편성되어 방송되었다. 종합편성채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유튜브도 없던 시절, 소수의 방송사가 뉴스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파급력은 엄청났고, 결국 그 여세로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무난하게 기각되었다.
이러한 편파방송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방송사들과 친여당 단체들, 그리고 학자들까지 나서 ‘찬·반 여론 비율에 따른 균형 보도’를 주장했다. 당시 탄핵 반대 여론이 90% 정도였으므로 탄핵 찬·반 보도 역시 9:1 비율이 맞다는 논리였다. 솔직히 언론의 공정성 개념을 완전히 벗어난 편파방송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 궤변이었다.
결국 당시 방송규제기구인 방송위원회는 언론학회에 탄핵 보도 평가연구를 위탁했다. 보수·진보 성향 학자들을 안배해 구성한 연구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의 ‘가장 느슨한 잣대로 평가해도 편파적이었다’는 최종 결론은 지금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당연히 보고서 결과를 놓고 극심한 논쟁와 갈등이 빚어졌지만, 그렇다고 의미있는 대안이 마련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이런 탄핵 관련 보도는 여야 모두에게 집권하면 공영방송을 더 철저하게 장악해야 한다는 의지만 강화시킨 셈이 되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공영방송 언론노조와 더욱 밀착해 견고한 노영방송 체제를 만들게 된다. 반면 공영방송 통제력을 상실한 보수 야당은 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정치권력과 언론이 공생하는 후견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 허용된 종합편성채널이 그것이다. 여러 평가 요인들이 고려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조·중·동이라는 보수 성향 신문사들이 사업자로 선정된 데는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그 후 일부 종합편성채널의 보도 성향을 보면 그런 의도대로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보도들을 봐도 그런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과 종합편성채널들까지 앞장서서 탄핵 몰이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더불어민주당의 여론조사기관 통제·카톡 검열·유튜버 압박 같은 반민주적 행태들이 노골화되고 탄핵 반대 여론이 커지면서 보도 태도가 변화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를 애써 외면하거나 왜곡·축소 보도하는 주류 언론들의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검찰·공수처·법원·헌법재판소의 상식을 벗어난 불법·불공정 행태들에 대해 침묵하는 태도도 그대로다. 심지어 야당이 제기한 내란 프레임이나 극우 같은 용어들도 거침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야말로 ‘가장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도’ ‘찬·반 여론 비율을 감안하더라도’ 편파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과 대구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무색하게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많은 군중이 모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이 ‘탄핵 찬·반 집회가 있었다’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보도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니 유튜브마저 없었다면 많은 국민은 탄핵 반대 여론 자체를 전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거의 모든 언론이 마치 외눈박이처럼 편파보도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경험했던 ‘눈에 난 언론사에 대한 압박’의 추억 때문일까. 각종 심의·규제나 재허가 심사, 정부의 광고 압박 같은 ‘예고된 아는 맛’이 생각보다 매운 것일까. 최근 스카이데일리 백지 광고 사태가 ‘그 맛’을 충분히 방증해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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