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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타워] 100여 년 만에 위상 뒤바뀐 한국와 일본
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03 00:02:50
▲ 박정석 도쿄 통신원
한 시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용기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청년의 상징이다. 일본도 피끓는 청년의 나라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늘 국가 주도형 변화에 익숙했기 때문일까 현대의 일본 젊은이들은 대부분 나약하고 모험을 회피하는 세대가 돼 버렸다
 
국가 발전엔 청년층의 도전과 열정이 필수다. 서구의 근대 문물을 배우며 부국강병의 길을 개척한 근대 일본의 발걸음, 해방 후 일제시대를 자양분 삼아 산업화의 역사를 쓴 대한민국 청년들의 용트림은 세계적 성공 사례들이다.
 
일본보다 200여 년 앞서 국가 발전의 꿈을 품고 배움의 여행에 나선 사람들이 영국에 있었다. 이런 류의 유학(遊學)은 리처드 러셀이 자신의 저서 이탈리아 여행’(1670)에서 그랜드 투어’라 언급한 이래 시대적 유행이자 문화로 자리잡았다. 서구 주요국들에서 17세기 중반~19세기 초 유행한 그랜드투어는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선진 프랑스 문물과 유럽 문명의 기원인 이탈리아 등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히는 긴 여행을 뜻하게 됐다. 약 3년에 걸쳐 가까운 친족이나 개인교사와 함께 움직이며 현지 석학·지성들과도 교류하는 최고급 교육 투어였던 것이다. 당시 유럽의 오지 취급을 받던 섬나라 영국에는 그랜드투어에 열성을 보인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다양한 그랜드투어 루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집중 체험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영국인들은 대륙의 관문격인 프랑스에 체류하며 일정을 개시했다.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 독일과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상업으로 입지를 굳힌 주변국들까지 돌아보고 귀국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유럽인들은 로마를 고대의 영광을 간직한 영원한 동경의 도시이며 풍부한 영감과 상상력을 제공하는 곳으로 여겼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내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시작된 날이라 생각한다고 썼으며 신흥국 영국의 시민들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열심히 읽게 된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었다
 
해외 유학은 미래의 국가 지도자를 양성하는 주요 과정이었다청년들의 도전정신이 나라 운명을 바꾸곤 하는데 그중 일본과 한국의 사례가 특히 눈길을 끈다. 비(非)유럽권이면서 열강에 진입한 일본, 식민 지배를 겪은 후 선진국이 된 한국 모두 예외적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약 100년의 시간차를 두고 비슷한 흐름을 보이며 각각 부국으로 성장했메이지유신과 박정희 시대 중심 인물들의 나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사이고 다카모리(40세)·요시다 쇼인(38세)·사카모토 료마(32세) 등 메이지시대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5.16 세력의 핵심인 박정희와 김종필 역시 당시 나이가 각각 44세·35세였다.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회담을 위해 1962년 일본을 방문한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국정원의 전신)에 대해 일본 정가에선 메이지시대 청년 지사 같다”는 평가가 회자됐다고 한다. 
 
영국에선 개별 귀족 가문들이 독립적으로 그랜드투어를 진행했다면 근대 일본판 그랜드투어는 국가 주도형이었다. 한국 또한 일본 메이지유신 모델을 참고한 형태였다. 일본형 그랜드투어의 효시는 메이지 4년, 즉 1871년 12월부터 약 2년간의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이었다. 당시 정부 예산의 1%를 쓰며 관료 약 절반을 미국·유럽 12개국으로 파견했고 그렇게 지속된 메이지시대 44년간의 열정이 일본을 아시아 1위 국가로 만들었다
 
메이지유신 직전인 1860년에도 에도막부는 미국 파견단과 2차 유럽 파견단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일원으로 서구를 다녀온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서 서양 사정’(1866) 초판이 15만 부가 팔렸다. 엄청난 신지식의 공유가 국가발전 밑거름으로 작용한 셈이다.
 
조선은 1881년 어윤중·홍영식 등 62명을 3개월 동안 일본과 청나라의 선진 문물 시찰·학습차 파견했다. 이른바 신사유람단. 하지만 파견 기간이 3개월밖에 안 됐으며 그나마 그들의 견문이 당대인들에게 널리 공유되지 못했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이 108명을 2년간 구미 12개국에 유학시킨 것을 생각하면 견문의 심도 차이도 컸을 것이다이것이 그 시점의 조선과 일본의 결정적 차이였다해방 이후 1960년대 박정희정부는 메이지 일본 수준에 미치진 못했으나 산업연수생 제도를 열심히 활용해 조국근대화로서의 산업화를 추진했다
 
영국은 그랜드투어가 양성해 낸 인재들이 활약하며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했. 현대의 로마 격인 세계 최강 미국으로 간 한국과 일본의 유학생 수는 어떨까. 미국 정부의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한인 유학생은 58787명으로 일본을 월등히 앞지른다. 2022년 통계엔 한국이 일본보다 5배쯤 많은 수로 기록돼 있다. 이 같은 교육열·성취욕을 통해 한국이 정보기술(IT) 등을 중심으로 일본보다 우위에 서게 된 것이라고 본다.
 
현재 일본에선 제2의 메이지유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한국으로부터 받은 자극의 영향이 크다. 한국은 이미 행정 체계나 일상생활의 고도 디지털화가 달성돼 있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뛰어난 디지털 능력·감수성을 자랑한다. 개개인의 네트워킹, 지구촌과의 소통도 자연히 수월하다. 이 방면에선 당분간 일본이 따라오기 어려울 만큼 앞서 있다. 한때 근대화의 모델과 방법론을 제공하고 배우던 관계가 역전된 모양새다. 앞으로도 한·일은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을 상보적 윈윈 관계를 이어 가야 더욱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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