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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 반역의 메달
김대중의 노벨상 프로젝트 [76] 한·미 ‘김정일 사망’ 깜깜… 北발표 때까지 몰라
사망 이틀 지나 공식 발표… 장례 절차 준비 위한 시간 벌기 때문인 듯
17년 전 김일성 때와 빼박은 듯한 장례식… 철저히 각본 따라 거행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31 06:30:53
2000년 1210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편집자 주]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국제 저널리스트
 
 
 
 
 
 
김정은 권력 세습의 장애물들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 이어진 권력 세습의 경우와 달리 김정일 사후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김정은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2001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되었다. 그는 아내와 네 살 난 아들, 그리고 경호원인지 애인인지 유모인지 모를 젊은 여인과 함께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했다. 그는 불법 입국한 이유를 묻는 일본 경찰의 질문에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서였다고 밝혀 세상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다. 김정남의 이러한 해프닝은 가뜩이나 그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있던 아버지 김정일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이전에 서방으로 탈출해 서울로 망명하고 난 후 평양의 은밀한 궁정 사생활을 폭로했던 처조카 이한영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1982년 한국으로 망명한 이한영은 망명 후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이란 책을 펴낸 후 19972월 김정일이 파견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한영은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이었다. 성혜림은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에게 본처 자리를 빼앗기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모스크바에서 성혜림을 돌보던 언니 성혜랑은1990년대 후반 딸 이남옥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차남 정철과 3남 정은은 같은 어머니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고용희는 이른바 기쁨조출신으로 김정일의 눈에 들어 본처 성혜림의 자리를 빼앗고 안방을 차지한 인물이다. 고용희 입장에서는 김정일의 차남이자 자신의 장남인 정철을 권력의 후계자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는 독재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에 적합한 성격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철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 콘서트장에서 그 모습이 노출되며 후계 구도에서 벗어났고 결국 3남인 김정은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다.
 
일본 밀입국 등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김정남
 
고용희는 2004년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김정남이 유럽마카오 등지에서 숨어 살기를 원했다. 김정남은 일찌감치 자신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지 고미가 쓴 책 나의 아버지 김정일과 나에서 김정남은 북한이 폐쇄적 공산주의를 버리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 북한 주민이 그러한 생각을 말했더라면 목이 열 개라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김정남은 책의 저자 고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의 권력 세습 가능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뜻밖이리만큼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내 아버지는 젊은 지도자로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부터 측근에서 따르던 권력 엘리트들에게 3대 세습까지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정남은 북한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고 북한 군부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1년 고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권력 세습이 실패할 경우 군부가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 2011년 12월20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김정일 사망 이틀 후에야 정보 확인한 한미 양국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생사의 경계를 오간 후 부분적으로 겨우 회복을 해 나가면서 사망하기까지 3년 동안 김정일은 3남을 속성 과정으로 후계자로 키우기 시작했다. 당뇨와 심장병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김정일은 김정은과 함께 일주일에 수차례씩 공장농장, 특히 군부대 등에 대한 이른바 현장 지도를 계속했다. 김정일은 장남인 김정남에게 권력을 넘겨줄 것을 포기한 후 곧바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선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11219일 김정일의 사망 발표에 따르면, 그는 이틀 전인 1217일 공장 또는 농장으로 현장 지도를 가던 중 전용 열차 안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측에선 김정일이 줴기밥(주먹밥)을 먹고 쪽잠을 자면서 과로했기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선전했지만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닐 것이다. 위성 관측 자료의 분석으로는 북한 방송에서 밝힌 시점에 해당 열차의 이동은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은 김정일이 이동 중인 열차 안이 아니라 자신의 여러 비밀 저택 중 한 곳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에게 그들의 지도자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선전하기 위해 사망 장소를 그렇게 밝힌 것이라는 분석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내부 정보
 
김정일의 사망 발표 후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왜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 모두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이틀이나 지나 북한 측의 공식 발표를 듣고서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정보활동 실패가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정보당국에서는 북한 주민들과 중국북한 접경 지역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휴대폰 통화 내용 감청을 통해 북한 내부의 사정을 파악해 왔다. 그럼에도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 때까지 몰랐던 것은 그만큼 북한의 내부 통제가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해외 정보기관들에도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놀라운 사건임이 분명했다. 이들 역시 평양 내부의 사정과 권력 엘리트들에 대한 정보에는 접근이 어려웠다. 정보라는 측면에서 북한은 언제나 블랙박스와 같다. 김정일은 사망일 바로 하루 전인 1216일 김정은과 장성택을 대동하고 새로 문을 연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모습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이것이 김정일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철저히 기획되고 연출된 지도자의 장례식
 
북한은 김정일 사망 사실을 왜 이틀이 지나 발표했을까. 다른 여러 의문들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아직 답을 알 수 없다. 사망 발표가 지연된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로는 김정일 시신 공개 등 장례 절차 준비를 위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이 있다.
 
김정일 사망 후 열흘이 지나 군부 원로당 지도부각료 및 고위 관리들이 김정일 시신이 들어 있는 유리관 앞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김정일의 시신은 러시아로 보내져 그곳의 과학자들에 의해 아버지 김일성의 경우처럼 방부 처리를 한 후 대동강변 금수산 기념관에 안치됐다.
 
한국 방송을 통해 김정일의 장례식을 지켜본 도널드 커크 기자는 장례 행렬을 따라 도로를 가득 메우고 오열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김일성 장례식 때 보다 정도가 더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커크는 19947월 김일성 장례식 당시에도 서울에서 방송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175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 아들의 장례식에서 주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슬퍼하는 분위기는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누구였는지 몰라도 김정일 장례식의 총감독은 세부적인 부분까지 김일성 장례식 때와 같은 각본에 따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장례식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었다. 19947월의 경우, 청명한 날씨에 장례 행렬이 지나는 도로변 가로수가 모두 짙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또한 길가에서 지도자의 마지막 길을 보며 오열하는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이들은 마치 헐리우드 영화의 엑스트라들처럼 조선중앙TV 감독의 큐 사인에 따라 움직이듯 일제히 통곡하며 슬픔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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