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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타워] ‘불가근불가원’ 그 편리함과 쓸쓸함에 대하여
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19 06:31:00
▲ 박정석 일본통신원·칼럼니스트
한 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을 탐구할 때는 마젤란이 도전적 항해를 떠나듯 거창한 학술 논문만 찾을 게 아니다.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서도 중요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도쿄의 한식점에서 일본인들과 삼겹살을 먹으며 들은 이야기다. 일본에서 생활한 세월이 한 세대에 이르는 필자지만 새삼 문화 충격을 받았다.
 
한 지인이 사촌들과 2~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식사를 한다기에 부러워하며 회사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고요.” 
 
그녀는 일본 사회 특유의 공기의 힘에 밀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사우회나 동창회는 어떤가요?” 확인 차 물었더니 일본에 그런 모임은 거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향의 동창 몇 명이 한번 모이자, 그런 전화는 있었죠.”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일본인의 인간관계 방식이 한국인과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한국의 우리가 남이가문화도 예전 같지 않다지만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일본인에게 만남이란 조직 속에서의 업무 등 공적인 만남일 때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필자의 체험을 되돌아봐도 일본인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푸근하다고 느꼈던 적은 드물다. 그러나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는다. 지진·해일 등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인 만큼 ‘생존을 위한’ 공동체 의식이 굳건한 것 또한 사실이다. 
 
현대 일본인의 일반적 인간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 말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소인배를 대할 때 잘해 주면 만만히 여기고 멀리하면 원망하니 적당히 거리를 두라는 취지의 설명이 훗날 이 여섯 글자로 정리된 것이다. 일본인의 소통 방식이야말로 철저한 불가근불가원이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해 한국인은 여전히 타인을 부르거나 말할 때 형·누나·오빠·이모 같은 친족의 호칭을 즐겨 동원한다. 오랜 한국 체류 경험 후 일본에 거주 중이라는 한 서구인의 인터뷰를 일본의 TV에서 접한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역동적이고 빠르며 편리하면서도 정겨워서 좋았다. 그러나 만남이 너무 많아 온전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휴식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활의 기반을 일본에 두고 가끔 한국에 놀러 가는 것을 선호한다.” 
 
일본인과의 교류에서 한국인 특유의 끈끈한 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을 지키는 것, 매너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전제되어야 그들과의 관계가 성립된다. 신세진 것은 바로바로 갚아 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게 일본에서 관계를 이어 가는 소통 방식의 기본이다. 한국의 인간관계처럼 숙성되면서 이자가 붙기도 혹은 깎이기도 하는 맛이 없다.
 
혈연에 대한 집착 역시 일본에선 일찌감치 사라졌다. 일본엔 종가집을 중심으로 일가족이 한데 모이는 명절 습관이 없다. 이는 일본에선 남성 중심의 유교적 가족 관계를 규정한 호주 제도가 패전 직후인 1947년에 폐지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선 2005년까지 존속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일 모두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주자학적 가치관의 보급과 심화 정도가 다르다. 제사 모실 아들이 없을 경우 축첩 등 친아들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가 정당화된 조선과 달리 에도시대 일본에선 아들의 가업 계승이 불가능할 경우 똘똘한 종업원을 데릴사위 내지 양자로 맞는 일이 흔했다.
 
일본엔 성씨(姓氏)가 약 30만 개라고 한다. 대부분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호적법 정비와 함께 생겨난 것들이며 오늘날까지 창씨는 진행 중이다. 반면 대한민국에선 귀화 등으로 성씨가 다양해졌다고 하나 여전히 김··박이 압도적 다수다. 조선 후기 들어 족보 매매가 흔해진 것과 관계가 깊다고 들었다. 사농공상의 주자학적 질서 아래 왕족이나 명문 양반가로의 신분 세탁이 유행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서양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흑인 인구에 스미스등 몇몇 성씨가 다수인 것은 노예해방 이후 주인의 성씨를 갖다 쓴 사람이 많아서다. 서양인들의 더 오래된 성씨 중에도 왕족·귀족으로부터 물려받거나 새로 만들어 하사받은 것들이 대다수다.
 
한국에서도 핵 가족화를 넘어 핵 개인의 물결 속에 전통적 가치가 빠르게 해체·부정돼 가는 분위기다. ‘영원한 객관적 진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으로 유지되는 일본인들처럼 되려는 것일까. 그 나름의 편리함·합리성을 인정하지만 아쉬움과 쓸쓸함을 떨칠 수 없다. 미풍양속까지 폐기 처분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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