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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지구촌 IN & OUT
‘오모테나시’는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가짐
이혁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4-26 08:35:00
▲ 이혁재 수석논설위원
누구나 일본 관련 미담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잠시 일본에 살았던 필자는 백화점 관련 추억담이 있다. 생활용품 코너를 지나다가 진열품을 툭 건드려 그릇들이 쏟아져 내리며 깨져 버렸다. 종업원이 달려와선 고개 숙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다치신 데는 없으신지요? 저희가 물건을 잘못 배치해서….
 
당황해서 백화점을 빠져나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어머니와 어린 초등학생이 타고 있었다. 그 꼬마는 사탕을 까 먹다가 사탕껍질을 버렸는데 하필 껍질이 필자 쪽으로 날아왔다. 어머니는 필자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뒤 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곤 가차없이 따귀를 올려붙였다. 우는 아이를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로 분류될 가정교육이었다.
 
어릴 때 일본에 살았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차별 많이 받았지? 고생했겠다.”
 
차별은 아니지만 서글픈 추억은 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일본의 또래들은 열이면 아홉 이렇게 물었다.
 
근데 한국, 어딨니?”
 
우리 대학생들이 단체로 온 적도 있었다. ·일 대학생들은 단체토론도 벌였고 우리 측은 정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경제 발전을 얘기했다. 일본 대학생들은 취미·연애 따위를 떠들었다. 어린 필자가 보기에 그런 일본 대학생들은 군기 빠진 희미한 놈들이었다.
 
그렇게 희미하던 일본인이 조금 두려워진 때가 있었다. J리그가 출범했을 때다. 한국은 물론 자신들의 조국에도 관심없어 보이던 그들이 축구 시합, 특히 국가대항전만 열리면 갑자기 국가주의자라도 된 양 닛폰을 외쳐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때는 아직 온천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 여관 종업원이 모두 몰려나와 웃으며 손 흔들어 주던 미담 같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
 
J리그 출범 때와도 같은 변화의 충격을 요즘 다시 느낀다. 바로 오모테나시’, 즉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일본의 오랜 문화에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해서 받은 충격이다. 이런 보도가 있었다.
 
일본 온천지대의 여관들이 오모테나시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일본인들 때문에, 바라는 게 너무 많은 일본인들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 한다. 그래서 짜증나는 일본인보다 외국손님을 100배 좋아한다.’
 
일본 언론에 나온 한 여관 종업원은 한밤중에 무료 야식을 갖다줘도, 눈 내릴 때 손님 자동차에 쌓인 눈을 치워 놓아도, 비오는 날 우산도 못 쓰고 손님 짐을 날라도, 모든 직원이 안녕히 가시라고 미소 터뜨리며 손을 흔들어도, 일본인 손님은 또다시 오모테나시를 요구한다고 했다.
 
멈출 줄 모르는 오모테나시 때문에 서비스업은 인력 부족이다. 일본 여관 중 65.4%가 직원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다. 오모테나시가 얼마나 지겨웠던지 한 관광버스 회사는 그 불만, 지나친 것 아닌가요? 손님은 하느님이 아닙니다라는 도발적인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친절하다는 일본인들은 사실 자기 돈 내고 뭔가 누릴 권리를 획득했다고 생각하면 태도가 가차없이 돌변한다. 택시 타면 말이 짧아지고, 음식점 가서 반말하고, 술집 가도 거만해지곤 한다.
 
근데그 오모테나시가 얼마 전 불쑥, 자랑스럽다는 듯 튀어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도쿄 긴자의 스키야키집·오무라이스집에 갔을 때다. 일본 언론들은 오모테나시, 오모테나시하며, 즉 한국 손님을 잘 대접했다며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단언코 말하건데 이건 아니다. 손님을 잘 모셨다·대접을 잘 했다는 차원의 오모테나시는 한·일 관계에 쓰기엔 특히 부적합한 말이다.
 
다도(茶道)’에 뿌리를 둔 오모테나시는 첫째 대가를 원하지 않는 무상(無償)’, 둘째 주는 쪽과 받는 쪽이 상하가 아닌 대등한 관계임을 전제로 한다. 상대는 결코 노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귀하신 왕족도 아니다. ‘주객 대등상황에서 서로의 성심성의를 확인하고 서로 절차탁마해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오모테나시가 지향하는 바다.
 
오모테나시는 식당과 여관의 무한서비스 따위가 아니다. ·일이 여관에서 온천하듯 끝없는 서비스를 바란다면 실망만 커진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길을 택해야 진정한 오모테나시가 가능해진다. 그래야 도쿄에서 오무라이스 먹은 것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럼 한·일 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눈앞의 명확한 목표와 공통 가치부터 달성하면 된다. 인적·경제적 교류는 당연하고, 우선은 발등의 불인 북한 핵 개발과 미사일, 중국의 확장 정책에 공동 대처하며 서로의 공통 가치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들 가치가 지고지순한 순백의 가치는 아니지만, 100원어치 뭘 줬으면 죽어도 당장 10엔어치는 꼭 받아내야겠다는 장사치 수준의 거래 또한 아니다. 더도 덜도 아닌, ·일의 생존과 공존과 미래를 가능케 해 주는 거래다.
 
당연한 말을 한 번 더 하자면 대접이나 친절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일 사이엔 친절한 대접보다는 상대를 인정하는 존중, 더불어 사는 마음가짐, 즉 진정한 오모테나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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