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 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천재가 등장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거기서 우리 손을 잡아요’를 가지고 쓴 쇼팽의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 op. 2를 듣고 슈만이 쓴 비평문에 나온 유명한 글귀다. 쇼팽은 슈만의 글에서 음악계에 새롭게 등장한 샛별이 되었고 슈만은 이 글로 공식적인 음악비평가가 됐다.
슈만이 비평가가 되기까지 사연이 있다. 22세의 슈만은 오른손 마비로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된다. 당시 피아노는 현대의 피아노 소리와 근접해 있을 정도로 발전했고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의 힘이 요구됐다. 당대의 유명한 피아노 선생 프리드리히 칼크 브레너는 학생들의 독립적인 손가락을 위해 손가락 훈련 기계를 적극 권장했고 손가락 훈련을 위한 다양한 기계 장치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슈만의 스승이자 슈만의 아내,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는 슈만의 손가락 부상은 무리한 손가락 훈련을 위한 기계 사용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반면 클라라는 슈만이 원래부터 알 수 없는 손 통증이 있다고 했지만 손가락을 훈련하는 기계 사용이 손의 마비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던 청년 슈만은 작곡가와 비평가의 길을 선택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슈만은 낭만주의 시대가 꽃을 피울 시기에 활동한 작곡가로 ‘가장 낭만적인 음악가’였다고 볼 수 있다. 시대적인 이유만이 전부가 아니다. 책과 늘 가까이 할 수 있는 그의 가정환경이 낭만적인 작곡가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충분했다. 슈만의 타고난 낭만성과 성격도 한 몫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슈만의 아버지는 작가이자 출판인이며 서점을 운영했다. 슈만은 어릴 때부터 많은 문학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누구보다도 19세기 낭만주의 이념을 빨리 경험하고 흡수할 수 있었다. 낭만주의 사조가 문학 분야에서 시작했고 그의 음악작품에 나타난 감정 세계는 낭만주의 문학을 많이 경험한 슈만이 아니었다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12개의 소곡들이 모인 슈만의 ‘나비’ 작품은 장 파울 리히터의 소설 ‘개구쟁이 시절’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특히 소설에서 나오는 ‘가면 무도회’ 장면을 많이 떠올렸다는 ‘나비’는 슈만이 본래 갖고 있는 품성의 다중적인 성격(플로레스탄, 오이제비우스, 라로 같은)을 최초로 드러낸 작품이다. ‘‘나비’는 일종의 가면극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얼굴 뒤에 무수히 존재하는 자아의 진짜 모습을 찾고 있다’는 슈만이 남긴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도 작품에 표제적인 제목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나비’는 단순한 표제적 제목이 아니다. ‘나비’는 은유적 표현이다. 슈만은 ‘나비’ 작품 외에도 ‘나비‘라는 제목을 좋아했다. ‘사육제’에 나오는 소곡 ‘나비’뿐 아니라 ‘아베크 변주곡’도 출판 전에 ‘나비’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슈만이 왜 이렇게 ‘나비’를 좋아했을까. 음악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유충에서 변태 과정을 통해 나비가 되듯이 슈만도 작품을 통해 성장하며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그의 내재적 갈망이 있지 않았을까 해석한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의 작가 구본형은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쫓는 긍정적인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두려움이 없다면 용기도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었을 때 음악평론가의 길을 선택했다. 슈만만이 고유하게 가질 수 있었던 문학적이면서 낭만적인 감수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그의 음악작품과 그가 쓴 글에서 보인다.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을 각기 다른 필명으로 글을 쓴 것 뿐 아니라 음악적 캐릭터로 만든 것은 음악작품에서도 음악비평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이었다. 문학에서 시작한 낭만주의 사조를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음악 비평 또한 한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시켜 글을 쓴 자체가 ’가장 낭만주의적인 작곡가‘의 위치를 증명했다.
예측할 수 없는 삶에서 두려움은 늘 존재한다. 두려움이 결국 용기로, 그 용기가 이전에 없던 새롭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애벌레가 성충나비가 되는 완성의 과정 속에 살 수 있다. 슈만의 ‘나비’. 오늘의 추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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