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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단순히 중동의 지역 분쟁이 아닌, 전 세계 경제와 외교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구조적 위기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중동은 한국 에너지 수입의 핵심 축으로, 석유와 가스 수급의 안정성을 좌우한다. 이미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10% 이상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넘는 등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의 증시도 2900선 아래로 급락하며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비상 대응반을 가동하고 24시간 금융 및 실물경제 모니터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사태 전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고 진단하며, 상황별 대응 계획에 따라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를 약속했다. 이 같은 정부의 초기 대응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보다 구조적인 대응 전략이 병행되지 않으면 곧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우선 에너지 수급의 경우, 비축유 방출은 단기 대응에 불과하다. 올해 3월 말 기준, 정부는 9개 비축 기지에 약 9950만 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약 4개월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수입 다변화, 원유 거래선(先)의 안정성 재검토, 대체 에너지 비율 확대 등 근본적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원전을 비롯해 수소·풍력 등 전력 개발의 폭을 넓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산업 생태계 재정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또한, 외환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환율 안정화 조치와 함께 대외 신인도 제고에 힘써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통화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정부의 정치·외교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외국민 보호 조치가 빈틈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에는 400~500명의 한국인이, 이란에는 약 100명이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국격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외교부는 현지 대사관을 통해 안전 공지와 대피 안내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이 폐쇄되고 항공편이 대부분 취소된 현실을 고려하면, 고립 상황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필요시 군 수송기를 통한 긴급 대피, 제3국을 통한 경유 대피 등 다층적 플랜 B가 준비돼야 할 것이다.
외교적 대응은 더욱 정교해야 한다.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한국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가는 아니지만,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국이며 동시에 이란과는 전략물자 거래 제한, 유엔 제재 등 민감한 외교 이슈를 공유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작전을 사실상 용인한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입장 정리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이 이제 단순한 수동적 수혜국이 아니라, 국제 질서 속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요구받는 시대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국제적 위기의 외교 공간에서 안전 보장과 에너지 안보, 경제 안정, 외교 원칙을 어떻게 조화롭게 운영할 것인가. 지금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진정한 시험대가 눈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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