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2º
습도 90%
대전 20º
습도 95%
여수 22º
습도 95%
)
초여름의 녹음이 짙게 깔린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집들과 푸른 밭, 맑게 열린 하늘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소성리는 한국 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2016년 7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최적지로 성주가 지목된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이어진 사드 철수 촉구 투쟁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 안보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과 주민 동의의 중요성을 묻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6·3 대선 이후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사드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카이데일리가 12일 찾은 소성리 마을은 평화로운 일상 뒤로 팽팽한 긴장감을 숨기고 있었다. 평온함은 마을 어귀에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로변 철조망과 가로수에는 빛이 바랜 현수막과 비교적 최근에 걸린 새 현수막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미군은 사드 가지고 당장 이 땅을 떠나라!”, “불법사드 철거하고 한반도 평화 실현하자!”, “핵전쟁 확장억제 제거하고 불법사드 철거하라!” 강렬한 문구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민주노총, 예수성심사제회 등 다양한 이름이 적힌 현수막들은 사드 배치가 이 작은 마을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줬다.
특히 “미국 본토 방어 위한 사드 설치! 불법사드 철거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라!”는 문구는 소성리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사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투쟁의 흔적은 곳곳에서 일상의 일부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소성리 열린 하우스’라는 작은 야외 무대, 그 앞 아스팔트에 새겨진 ‘NO THAAD, YES PEACE’ 페인트 글씨는 이곳이 단순한 시골이 아닌, 10년 넘게 평화를 외쳐온 공간임을 말해줬다. 길가의 돌멩이에는 평화의 상징들이 알록달록 색칠돼 있었고, ‘소성2길’ 표지판 옆 농성 텐트는 사드 장비 반입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자 투쟁의 구심점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성리 사드 기지 설치는 2017년 국방부와 롯데 간 부지 교환 계약으로 본격화됐다. 첫 미군 기지 공사 장비 반입 당시, 주민들과 경찰 간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2016년 당시, 성주군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여론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부 발표는 일방적이었고, 심지어 성주군청 공무원조차 사전에 배치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인구 밀집 지역이 레이더 영향권에 포함된다는 우려는 주민들의 반발을 키웠다.
이후에도 공사, 장비 반입, 미군 통행 등을 둘러싸고 물리적 갈등이 반복됐다. 다만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사드 부지 공여가 완료되고, 2023년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서 대규모 물리적 충돌은 줄어든 상태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사드 배치가 주민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법적 갈등도 사실상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관심은 이재명 정부의 향후 방침에 쏠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 대화”를 강조해왔지만,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외교·안보 공약에서 ‘사드 철수’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관계를 균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강하고 실용적인 대한민국’ 국정 비전 역시 안보 현안에 있어 실용적 접근을 강조하는 기조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사드 기지 문제를 다시 재검토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주변국, 특히 중국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소성리 주민들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조정이나 협의의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은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의 ‘사회적 갈등 관리’ 기조를 고려할 때, 소성리 주민들과의 대화 채널을 복원할 여지는 남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마을회관 주변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소성리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고립’이었다고한다. 일부 언론은 사드 반대 세력을 ‘종북’ 혹은 ‘반국가 확신범’으로 규정했고, 외부의 시선은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았기 때문이다. 지역적 고립감과 사회적 낙인이 현재에도 여전함을 보여줬다.
기자가 마을회관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으나, 이들은 언론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언론사 명함을 본 이들은 약 20초간의 침묵 끝에 “우리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돌아가라”는 짧은 답을 남겼을 뿐, 사드 기지와 관련한 그 어떤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이후 성곡리 마을을 돌며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을 만났으나, 그는 “아는 게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몇 번의 외면 끝에 어렵게 만난 한 성곡리 주민은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사드가 마을 위에 있으니, 주민들 표현으로 ‘머리 위에 사드를 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쟁 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사드를 ‘북한 방어용’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무기라는 걸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평화적으로 반대해왔음에도 ‘국방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처럼 취급받아 온 현실’에 대한 억울함도 토로했다. 성곡리 주민에게 사드 철거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절박한 소망이었다.
그는 “사드 철거를 촉구하자 일부는 주민을 빨갱이 취급했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사드가 철수할 것이라고 믿는 주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정권이 이재명 정부로 바뀌어도 사드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며 정치권에 대한 깊은 실망을 드러냈다.
한편,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사드 배치 지연은 국익을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2016년부터 2017년 ‘사드 배치는 안보를 위한 필수’라며 사드 배치를 주장하며 성주를 직접 찾아 맞불 투쟁을 했다고 밝힌 보수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자를 만나 “과거 수천 개는 됐을 플래카드가 현재는 일부만 남았다”며 “전국에 좌파 시민단체 이름을 플래카드 작성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지 현재에도 이해가 불가하다”고 토로했다.
소성리의 시간은 사드 철거를 중심으로 10년째 멈춰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그는 “사드는 북한의 핵 위협에서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어 수단이자, 안보와 국익 차원에서 꼭 필요한 무기체계”라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드 배치 부지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드 배치를 지연시켰고, 이를 정치화하며 소성리 마을 주민을 지역이기주의에 몰아 넣었다”고 지적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