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기업의 ‘엑시트 코리아’ 이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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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대(對)기업 정서와 정부의 온갖 규제가 큰 원인
한국 떠나는 기업들 세계 각국이 앞다퉈 유치 나서
국가 핵심 자산 방치 지속되면 국력 쇠퇴는 불가피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5 06:31:30

정권 교체 후유증과 무소불위의 여소 야대 정치판이 계속되면서 한국의 성장판이 굳게 닫혀 버렸다.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거친 정치의 완력에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하고 마냥 표류하는 형국이다. 바깥세상은 하루가 멀다 할 만큼 격한 변화로 우리의 이익을 실시간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건 정치나 정부가 잘나서가 아니라 민간의 경쟁력이 아직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글로벌경제 전쟁에서 기업이 고군분투하고 있고, 소프트파워인 한류가 한국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와 달리 정작 우리 내부에서 기업이나 한류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시큰둥하다. 소중함을 망각하다 보니 해외에만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요즘 며칠간 여야 당 대표 선거로 정국이 시끌벅적했다. 여러 차례 토론을 통해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주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기회가 있었다. 평가는 매우 명료하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인사들의 자질이 국민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들에게 나라의 곳간과 입법 권한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국가가 당면한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해결 방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본적인 소양과 인격·식견·경험·현장감 등 어느 하나도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이미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국민이 많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무관심이 이들에게 더 날개를 달아 주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나라에 장래 닥칠 더 큰 위기의 기운이 벌써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며칠 전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도요타 자동차가 일본을 떠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와서다. 오랜 잃어버린 세월 중에서도 도요타 자동차는 일본 국민의 자존심에 비유되었을 정도의 상징적인 기업이다. 소니나 파나소닉 등과 같은 정보기술( IT)·전자 업체들이 몰락의 길을 걸은 것과 대조적으로 도요타는 건재했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고질적인 병폐인 관치(官治)를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토로한 것이다. 당장 떠나지는 않겠지만 떠날 수도 있음을 시사하면서 작심하고 일본 정치판과 정부에 경고장을 던졌다.

이건 이웃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 안방 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심각하다. 온갖 규제의 덫과 만연한 반기업 정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정치권의 구태나 기업에 대한 편향적 시각 등이 일본의 경우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모(某) 일간지가 한국을 공장 수출국 1위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어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 창출 1위 기여국이 한국이라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월등하다. 기업들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공공연하게 토로한다. 이를 알아차린 세계 각국은 한국 기업 유치에 혈안이 되고 있다. 기업이 떠나면 자금이 새고 인재도 나가기 마련이다.

‘엑시트 차이나(Exit China)’라며 남의 나라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엑시트 코리아(Exit Korea)’가 오래전부터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요즘 발표되는 각종 지표의 국가별 순위를 보면 좋은 것은 꼴찌에 가깝고, 나쁜 내용은 대부분 상단에 위치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린 적도 있지만 이마저도 퇴색해 투자에서마저 적자국이 된 지 오래다.

국내 기업이 밖으로 나가는데 외국 기업이 안으로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심지어 안에 있던 외국 기업마저 보따리를 싸는 형편이다. 규제 범벅으로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국가에 남아 있을 까닭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인재 고갈은 더 치명적이다. 투자에 이어 인재 적자국이 된 지도 꽤 되었다. 단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늘어나고 있다지만 산업 핵심 인력이 해외로만 나돈다. 대우도 신통찮고 일할 환경도 갈수록 열약해지고 있어서다.

국가의 핵심 자산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가 지속되는 한 국력의 쇠퇴는 불가피하다. 근본적인 처방에는 늘 뒷전이고 말초적인 재정 살포나 임기응변식 땜질 대응으로는 성장 동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라 안팎에서 한국의 장래에 대해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삼성이나 현대가 떠난 한국의 미래를 가상할 수 있을까. 특정 대기업을 옹호하자는 건 아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한국이나 한국 대통령은 몰라도 우리 대기업을 아는 외국인이 수두룩하다.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류가 꽃을 피우고, 중소기업도 적잖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관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 꽃이 시들어 버리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당 대표가 선출되고 전열이 정비되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를 다시 기대해 본다.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부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정치는 독불장군식 태도를 버리고 세상 인재를 찾아 두루 등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또다시 골든타임을 놓치면 대한민국이 더 큰 나락으로 빠지는 건 정해진 열차 시간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