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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으나, 남겨진 유가족에 그날의 아픔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들이 근무했던 평택 2함대 해군기지 앞에서 밥집을 차려 해군 장병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가 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고(故)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 석정식당 대표 이야기다.
18일 스카이데일리가 찾은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걸어서 15분 남짓 거리에 자리한 한식당 ‘석정’은 평범한 백반집 같지만, 유 대표의 마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식당 이상의 숭고하고 애틋한 인연이 매번 꽃피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천안함 피격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있다.
현재 호국보훈연구소장으로서 평택 2함대를 방문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안보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 소장은 빠짐없이 이들을 이끌고 2함대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위치한 ‘석정’을 찾는다. 단순한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은 그에게,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살아있는 안보 교육’의 현장이자, 아들을 잃은 전우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기억하는 추모의 공간이 된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최 소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들이나 살가운 가족이다. 유 대표를 보자마자 그는 허물없이 다가가 손을 잡고 안부를 묻는다. “어머니, 오늘도 왔어요. 장사는 좀 잘 되세요. 건강은 어떠세요”라고 묻는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가슴 시린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는 순간들이다.
유 대표 역시 최 소장을 늘 환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2함대에서 근무했던 예비역 해군 장교는 “근무 할 때 엄마 손맛이 그리워서 자주왔다”며 “2함대 근무 해군장병은 유 대표를 모두 ‘어머니’ ‘엄마’라고 한다”고 밝혔다.
식당을 찾은 이들은 최 소장과 유 대표의 뭉클한 상봉을 지켜보며, 천안함 피격 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곁에 남은 이들의 아픔과 희생, 그리고 그를 위로하고 기억하려는 숭고한 노력으로 현재 진행형임을 깨닫는다.
점심시간, 천안함 장병에 대한 애정어린 기억이 묻어나는 벽면을 중심으로 구수한 냄새가 가득한 김치찌개 백반 한 상이 차려졌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만으로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김치찌개는 뭉근하게 익은 김치와 두부, 두툼한 돼지고기가 아낌없이 들어갔다.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함께 나온 밑반찬들도 하나하나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따끈한 계란말이, 아삭한 콩나물무침, 직접 쑤운 묵으로 무쳤다는 도토리 묵무침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었다. 마치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상처럼, 소박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는 지친 일상에 큰 위로가 됐다.
해군 장병들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 식당에는 사연이 있다. 30년 넘게 정든 부산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유 대표가 연고도 없는 평택에 식당을 열게 된 것은 14년 전, 천안함에 승선했던 아들 문규석 상사(당시 계급) 때문이었다. 아들은 백령도로 임무를 떠나기 전, 장병들이 부대 앞 식당까지 멀리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어머니에게 식당을 해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2010년 3월26일 사건 발발을 앞두고 훈련을 떠나던 그는 “부대 앞에 식당이 멀다. 엄마는 남한테 주는 것 좋아하고 음식도 잘 하니까 한번 해보셔라”고 권했다고 한다. 문 상사는 “3월 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평택으로 올라가서 가게 자리 한번 알아볼게”라고 했던 문 상사와 마지막 대화는 유 대표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약속, 아들의 마지막 유언이 됐다.
아들 뜻에 따라 백반집 ‘석정’을 차린 지도 올해로 14년이 흘렀다. 천안함 피격 이듬해인 2011년 5월 처음 2함대 근처에 식당을 열었고, 2014년 4월에는 장병들이 더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부대에서 더 가깝고 자리도 넓은 지금의 곳으로 옮겨왔다.
유 대표 “천안함 장병들,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 마지막 당부
유 대표는 스카이데일리와 인터뷰 시작부터 감정이 북받치는 듯 쉽게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자식들이기에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기억 좀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유 대표는 “사심 없이 나라를 위해 나섰던 아들들을 떠올리며, 국민들이 그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줄 때 군 장병들도 더욱 힘을 얻어 나라를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유 대표는 특히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각종 음모론과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국방부의 북한 소행이라는 공식 발표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왜 그러면 밝히지를 않냐고 밝혀줘야지 지금까지 밝힌 거 없다”며 반박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인정하지 않고 시시부지하게 넘어가는 태도에 깊은 상처를 받았음을 내비쳤다.
유 대표는 국가유공자에 대해 “(민주유공자와) 차별 주지 말고 똑같이 좀 인정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는 특조위 구성 등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집중되는 반면, 천안함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국회 차원에서 제대로 수렴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천안함 유가족들은 충분한 인정과 예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다른 희생자들에게 쏠리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더 아프게 다가온다는 복잡한 심경이 오고간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유 대표의 목소리에는 아들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다시 묻어났다. 유 대표는 “규석아, 엄마가 아직 장사를 하지만 엄마가 아파서 갈 때까지 (잘 있다가) 엄마 만나러 오렴. 잘 있어라!” 그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부대 곁을 지키며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일, 그리고 장병들을 살뜰히 챙기는 일을 통해 아들을 향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헌신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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