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 인간은 어떻게 협동하도록 진화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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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11 00:02:50

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로서 높은 지능을 자랑한다. 그 비밀은 인간보다 큰 뇌에 있다. 고래는 휘파람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개체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이름으로 활용된다. 그들은 지능이 높은 만큼 유대감도 강하다. 서로 애무도 즐긴다. 수컷들은 인간처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연합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사냥꾼들은 고래가 갖는 강한 협력심을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향유고래 무리 중 한 마리에게 그저 작살을 던지면 됐다. 무리 중 공격을 받은 개체가 있으면 다른 고래들은 이를 보고만 있지 않는다. 인간이 탄 배를 포위하고 꼬리로 물을 튀기거나 부상을 입은 동료를 꽃 모양 대형으로 둘러싸고는 떠나지 않는다. 사냥꾼 입장에서는 호재다. 그들은 모여든 고래들을 한 마리씩 사냥한다.

초식동물 무리 중 한 마리가 사자에게 공격당하면 나머지는 뒤도 안 보고 내달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고래는 정반대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도 유대감이 강하다. 그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서로의 털을 골라 주며 지낸다. 꼼꼼하게 털에 붙은 이물질을 아주 지극 정성으로 제거해 준다.

그들의 털고르기는 친밀감과 애정을 표현하는 본능적 행위이다. 유심히 보면 털을 골라 주다가 등을 긁어 주기도 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사회적 등긁기가 선천적 행동이 아님을 알아냈다. 이 행위는 일종의 풍습이다. 유인원들은 자기가 느낀 것을 다른 이도 똑같이 느낀다는 인식을 할 줄 안다.

사회적 유대감은 양육에도 적용된다. 케냐 평원의 개코원숭이를 관찰한 결과 사회적 유대가 가장 강한 암컷들의 새끼가 가장 잘 살아남았다. 단짝이 있는 암컷들은 서로 많은 정보를 교류하고 공동 육아가 가능하여 새끼의 생존률을 높인다. 무리생활에는 공격성의 위험이 따른다. 무리 밖에서 오는 위험도 있지만 무리 내의 공격도 있다.

그래서 침팬지는 암컷과 수컷 모두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적극적으로 중재한다. 알파 수컷의 큰 임무 중 하나는 중재력이다. 암컷 간에 또는 어미와 새끼 간에 다툼이나 유기가 있을 때 방치하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서 화해를 시키고 그것도 안 되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평화를 유지한다. 암컷도 마찬가지이다. 수컷들이 싸움을 개시하려고 할 때, 혹은 다투고 나서 화해하지 않을 때, 유화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중재한다. 유인원들은 집단 내의 문제를 방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평화가 유지된다.

고래보다, 유인원보다 지능이 월등한 인간은 어떻게 협동을 유지할까. 그것은 인간 여성의 발정기와 관련이 있다. 인간은 생물종 가운데 여성에게 발정기가 없는 유일한 동물이다. 범위를 좁혀서 다른 영장류에 집중해 보자. 대부분의 영장류 암컷들은 평소에는 온순하다가 배란기에 공격성을 갖는다. 그만큼 성적으로 활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정기의 암컷 붉은털원숭이는 수컷을 유인하고 흥분시키는 지방산을 다량 분비한다.

반면 인간 여성의 배란기는 다른 개체에게 감추어져 있다. 임신을 하거나 또는 피하는 일은 본인만이 알 일이다. 인간 여성에게는 다른 포유류들에게서 발정기라고 정의되는, 준비 상태가 최고조에 달하는 일이 전혀 없다.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여성의 배란을 월경 주기 전체에 균등하게 분산시킴으로써 발정기를 제거했다.

그 결과 유달리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남녀의 성행위는 남녀의 결합을 확고하게 하는 주된 역할을 하며, 동시에 놀랍게도 이는 남성끼리의 공격성을 약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인간 이외의 영장류 사회에서는 암컷이 발정기에 도달하면 수컷 사이의 적대감이 고조된다. 하지만 발정기가 제거된 초기 인류에게는 그런 경쟁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남성 사냥꾼끼리의 동맹 또한 자연스레 보장되었다.

만약에 인간 여성에게 발정기가 뚜렷하고 다른 영장류처럼 단기간만 지속된다면 인류 사회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지금과 같이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조직이 갖추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무리가 갖는 생존의 혜택을 잘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협동의 방식을 계발하고 믿을 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해 왔다. 나아가 스스로 믿을 만한 사람임을 과시해 좋은 평판을 쌓고 재화와 정보를 교류했다. 사실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사회는 곤충 사회에 비해 훨씬 덜 조직화되어 있다. 개미나 꿀벌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조직적인지 알 수 있다.

포유류의 사회는 위계질서, 이합집산식의 연합, 그리고 혈족 동맹 등에 의존한다. 그에 더해 인간은 장기적인 계약을 통해 친족 동맹과 유사한 형태의 연합을 비친족 개체에까지 확장함으로써 한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사회 조직을 발전시켜 왔다. 인류의 견고한 협동에는 여성의 배란기의 비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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