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타임 떡볶이집에서 만나기 전에 또 한 번의 해프닝이 있었다. 희숙이 작업장에서 부품 포장 작업을 하고 있는데 권지호가 희숙 옆에 와서 노동조합 말이야, 영어로 Trade Union이 맞을까, Labor Union이 맞을까. 희숙이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권지호는 아, 맞다. 그거 영국 놈들은 Trade Union이라 하고 미국 놈들은 Labor Union이라 하더라. 애덤 스미스 국부론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
“The workmen desire to get as much, the masters to give as little as possible. The former are disposed to combine in order to raise, the latter in order to lower, the wages of labour.
노동자들은 최대한 많은 임금을 받으려고 하고 주인들은 최대한 적게 주려고 한다. 전자는 노동력의 가격을 높이려고, 그리고 후자는 낮추려고 뭉치는 경향을 지닌다.”
권지호는 희숙의 반응이나 표정을 확인하지 않고 휙 지나갔다.
권지호는 종종 알다가도 모를 행동을 했다. 어떤 때는 희숙을 완전한 공순이로 취급했다가 어떤 때는 희숙을 작업장 여공들과 다른 사람 대하듯 했다. 어려운 단어나 영어를 툭툭 던지기도 하고 일자무식 대하듯 쉬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한자를 섞어서 말을 했다가도 아참, 이런 건 잘 모르겠네, 하면서 한글 배우는 아이처럼 대하기도 했다. 영어나 한자를 섞어 급습할 땐 희숙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반응을 살폈다. 실수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길 바라는 친절한 게쉬타포처럼 행동했다.
희숙을 테스트하는 게 분명했다. 희숙은 그럴 때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훈련받은 대로 한 템포 쉬며 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척 표정을 관리했다. 그러나 권지호만 그러는 건 아니었다. 간부들조차 가끔 희숙에게 영어 단어가 쓰인 서류를 가져와서 이게 무슨 뜻이야? 묻곤 했다. 희숙이 짜증 나는 얼굴로 제가 어떻게 압니꺼, 꼬부랑글씨를. 하면 이내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나는 희숙이 알 거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네. 아주 공부 잘하게 생겨서 그랬나 봐. 수학 잘한다며. 영어도 잘하는 줄 알고. 미안, 미안!”
영어뿐이 아니었다. 동이가 희숙을 수학 잘한다고 소문낸 뒤로 가끔 경리부 직원과 회계 담당 부장이 찾아와 연산이 잘 됐는지 봐 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경리부 직원은 여상 출신이고 회계 담당 부장은 상고 출신이라 연산이 잘못될 리 없었다. 그들이 장부를 들고 와 희숙에게 혹시나 틀린 게 있는지 봐 달라고 한 것은 권지호가 지시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희숙은 틈을 보인 적이 없었다. 희숙의 훈련은 취업 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일 절대 노출되어선 안 된다고 다짐했고, 책도 신문도 보지 않았다.
‘도대체 권지호, 어디까지 아는 거야.’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