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위기 몰려오는데 정부는 시나리오 플래닝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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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패닉 키운 각국 경제 수장의 오판
위기 돌파 위한 선제적 처방 신속히 내놔야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8 06:31:30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8∼9월에 경기 순환에 큰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는 시장의 전망이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한 것이다. 여기엔 미국발(發) ‘R(Recession·경기침체)’ 공포가 도화선이 되었지만, 미국보다는 아시아 증시가 더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불안하게 유지되던 글로벌 경기에 일시에 찬물이 끼얹어진 꼴이다. 한국·일본·대만의 충격이 큰 것은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고 특히 미국 빅테크에 지나치게 맞물린 결과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이후 일일 증시 낙폭이 최대치인 블랙 먼데이이자 한국 증시에서는 4년 5개월 만에 두 번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지금 당장 주목되는 것은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심각한 경기 후퇴로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위기가 초래된 배경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고 있는 것은 주요국 중앙은행장, 즉 경제 수장들의 판단 착오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 의장은 미국 경제에 대한 오판으로 금리인하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침체 우려 확산으로 고용시장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었지만 지나친 낙관으로 오히려 공포심을 부추겼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민감한 시기에 디플레이션 탈출에 자신감을 보이며 시장 상황에 반하는 역(逆)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하는 바람에 엔캐리(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금리·고수익이 기대되는 다른 국가의 통화나 자산·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 자금이 이탈하면서 증시 폭락의 원인 제공을 했다.

한국은행이나 우리 경제 수장들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부동산시장 불안과 가계 빚 부담을 의식해 금리인하에 대한 부정적 신호를 계속해서 시장에 흘려 보냈다.

다음으로 왜 한국이나 일본 혹은 대만 증시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하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한 국가의 경제 상황이 타국 또는 세계 경제 흐름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3국의 경제는 미국에 더 가까이 붙는 커플링이 확대된 점이다. 특히 미국 빅테크에 의존해 반도체 등의 수출로 경제를 버티는 현상이 심화하는 중이다.

인공지능(A)I 버블이라고 할 정도로 관련 빅테크의 지나친 몸집 불리기에 대한 경고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직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 붕괴와 견줄 정도의 다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 대세다. 다만 AI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나친 AI 경제 기대감에 대한 경계 의식과 AI 기업 옥석 가리기는 불가피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게 마련이다.

이에 더해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커지고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동 전쟁의 확전이 기로에 서 있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뉴스가 지구촌을 달군다. 미국발 금융 공포에 더해 실물로 전이되는 위기의 확산이다. 실제로 국제 원자재 가격과 원유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에 더해 중국의 경기침체까지 대두되면서 금융과 실물 경제가 동시에 꽁꽁 얼어붙을 수 있다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시장이 필요 이상으로 과민해지면서 위기를 키우고 기업이나 개인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하반기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를 관리해 나가야 하는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각국 경제팀의 대응 능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 전망치를 0.2%p 상향하여 2.5%로 조정해 발표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인 7월 중순이다. 수출 증가세와 더불어 1분기 깜짝 성장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엊그제 발표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성장 전망치를 보면 대체로 다시 낮추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는 소비와 건설 등 내수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예측에 기인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심상찮다. 수도권의 경우 수요 대비 공급 부족으로 전세와 매매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공급 부족은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일관했다. 시장은 여전히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간은 규제에 제동이 걸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면서도 말만 앞서고 실행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일반적으로 반응 속도가 우리보다 늦다는 일본은 도심 재정비와 노후 주택 개선을 통해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독감에 걸린다는 말이 회자했다. 이제는 이 말을 중국 대신 미국으로 바꾸어야 할 판이다. 미·중 충돌 확대로 경제와 안보가 하나의 축에서 움직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커플링과 디커플링이 가져오는 손익분기점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또 다른 변수인 미국 대선(大選)의 풍향계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아수라판으로 변한 정치권에 대한 변화의 기대는 접은 지 오래지만, 정부라도 중심을 잡고 위기 대응 시나리오 플래닝을 해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긍정의 시그널이다. 일례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실효적인 대책을 들 수 있다. 택지 공급과 같은 낡은 프레임이 아닌 재건축 등 도심 재개발 등 실효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 눈치만 보지 말고 선제적 금리인하 등 적극적 처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