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한국 영화의 새 이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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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8 06:31:10

한류가 세계적인 추세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문화가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국 음식이 K푸드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패션·화장법을 비롯해 난방 기술인 온돌 등 각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한글이나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인구가 늘고, 한국 가수가 부르는 팝은 한국 문화를 선도하는 기수 역할을 하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나 ‘대장금’이 선풍을 일으킬 때만 해도 어쩌다 일어난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지만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나 미국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연기자들이 주요 부문 상을 받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한국 영화는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모습이다. 우선 일본에서 사용하던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영화(映畵)·배우(俳優)·촬영(撮影)·편집(編輯) 등 대부분의 용어가 일본식이다. 최근에는 영어식 표현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눈길을 모으는 연기자라는 뜻의 신스틸러, 카메라를 들고 찍는다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방향을 상하 또는 좌우로 움직일 때 틸트 또는 패닝이라고 하는 경우다.

야구에서 한때 ‘데드볼’이라고 하던 것을 ‘던진 공에 맞기’(hit by pitched ball), ‘만루’를 ‘베이스 온 로디드‘(base on loaded)라고 하는 것 등은 일본식 용어를 영어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 같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연극평론가 양혜숙은 최근 발간한 ‘사람은 무엇으로 신나는가-한국 공연예술의 뿌리를 찾아서’(어티피컬사 발행)에서 한국 연극의 이름을 ‘한극’(韓劇)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국 영화도 ‘K무비’라고 통칭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한국 영화를 가리키는 용어는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영화’(映畵)는 일본의 ‘에이가’(映畵)라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자로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각각 발음만 다를 뿐이다.

그동안 국내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의 시작이 어디인가를 두고 역사가 100년이냐 아니냐를 논쟁한 적은 있지만 ‘영화’를 대체할 수 있는 명칭 논쟁을 벌인 경우는 없다. 영화가 처음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01년, 대한제국 시절 한국을 여행한 미국인 여행가에 의해서였다.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곧장 ‘영화’라고 한 건 아니었다. 영화를 처음 개발한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워낙 예전에 없던 장비를 만든 것이어서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독점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특허 등록한 이름을 영화의 명칭으로 사용했다. 에디슨이 개발한 장치는 ‘키네토스코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장치는 ‘시네마토그라프’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영국·독일에서도 비슷한 장치들이 잇달아 나왔고, 저마다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가 점차 영화 매체를 통칭하는 용어를 찾게 되었는데,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뜻으로 ‘무빙픽처(moving picture)’나 ‘모션픽처(motion picture)’가 자연스럽게 퍼졌다. 각각의 특허 이름을 넘어 영화를 가리키는 통합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모션픽처가 널리 사용되면서 대표 용어로 자리잡는 모습을 보였다. ‘활동사진(活動寫眞)’이라는 명칭은 ‘모션픽처’를 일본에서 번안한 용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미국 방식인 ‘키네토스코프’와 프랑스 방식인 ‘시네마토그라프’를 도입한 시기와 경로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스스로 그림을 비춘다는 뜻의 ‘자동환화(自動幻畵)’, 저절로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의미를 담은 ‘자동사진(自動寫眞)’, 움직이는 큰 사진이라는 뜻으로 ‘활동대사진(活動大寫眞)’ 등 여러 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활동사진’이 앞서 가기 시작했고 결국 초기 영화의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활동사진’이 ‘영화’라는 용어로 바뀐 것은 대략 1930년대에 들어서다. 일본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도 그대로 유입됐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고 있는 이 용어는 새로운 문물을 가리키는 신개념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논란도 없었고, 워낙 오래 사용하다 보니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극 분야에서의 한국 연극 이름찾기를 주목하며 한국 영화도 적당한 이름을 찾을 때가 되었다. 일본식 용어이기 때문에 벗어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가 자립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다른 나라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금 한국 영화를 가리키는 독자적인 이름을 찾자는 것이다.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23년이 되어서야 자립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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