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마석도 형사’와 ‘더티 하리’가 영웅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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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1 06:31:10

형사 ‘마석도’는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다. 지금까지 4편이 나왔고 2·3·4편은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1편(2004)과 달리 2편(2022)은 1269만을 기록하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제3편(2023)·제4편(2024)도 연속으로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으는 신기록을 세움으로써 한국영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경우로 꼽힌다.

1편 때는 ‘천만 관객’을 달성하지 못하다가 같은 주인공을 설정한 영화가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은 주인공 같은 캐릭터를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뜻이다.

마석도 형사는 탱크 같은 존재다. 흉기를 들고 덤벼드는 범죄자들에게 끄떡도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린다. 가리봉동의 조선족 폭력 조직·베트남에서 활개치는 건달·일본 야쿠자 조직의 마약 거래단과 손잡은 경찰관 등 장소와 사건 내용은 다르지만 마석도가 결국 평정을 하고 만다는 구성은 다를 바 없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지만 영화로 꿈꿀 수 있는 이상적인 영웅이다. 영화는 실제 생활에서 매일 겪는 현실이 아니라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의 가상현실을 보여 준다. 우연히 만난 청춘 남녀가 멋진 사랑을 하고, 악당들이 휘젓는 동네에 의인이 나타나고, 정의감에 불타는 보안관이 등장해 마을의 질서를 되찾는 것이 수많은 영화의 결말이었다. 결국 모든 영화는 빤한 결론을 정해 놓지만 그 같은 마무리에 이르는 과정을 얼마나 색다르게 변주하는가의 경쟁이다.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 맛집 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양념이나 국물 맛을 조금이라도 색다르게 내기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식당 주인처럼 영화는 빤한 소재를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그럴듯하게 꾸미는가의 차별화 결과다.

덕분에 관객은 똑같은 결론의 영화를 보면서도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처음 보는 이야기처럼 빠져든다. 범죄도시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는 이미 ‘강철중’ 시리즈나 ‘베테랑’ 같은 영화들에서 선보인 바 있다. 모두 다 ‘꼴통’ 소리를 듣지만 소신껏 밀고 나가 결국 범인을 잡아들이는 열혈 형사의 모습이다. ‘범죄도시’에 등장하는 마석도 형사는 배우 마동석의 이미지와 영화적인 캐릭터가 합쳐서 만들어진 상상의 영웅이다.

형사를 넘어 슈퍼 히어로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모습은 바로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홍길동이나 임꺽정의 환생인 셈이다. 실제 모습이 어떤지는 알 수 없고 구체적인 기록이나 자료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저마다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최고의 흥행 시리즈가 된 것은 그 같은 인물의 등장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이기도 하다. 현실로 보는 관리·정치인·사회 지도층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 겉으로는 서민과 약자를 지지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재물 모으기에 혈안이고 자식들은 외국에 유학 보내거나 이중 국적을 갖게 해 주고 보란 듯이 자랑한다. 그런 모습 앞에 국민의 허탈한 마음이 영화적인 영웅의 재현으로 모아진 셈이다.

경찰 액션 흥행의 기선을 잡은 것은 1970년대의 ‘더티 하리’ 시리즈가 처음이다. 주인공 하리 칼라한은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정치적 시류를 눈치 보지도 않는다. 범죄자는 용서도 자비도 없이 무조건 응징한다. 죄 지은 범인(피의자)에게는 오로지 응분의 처벌이 따르게 하는 것이다. 이전의 경찰 드라마나 형사 영화들은 법의 수호자이기는 했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범죄자들과 결탁한 적도 없고 공동체의 질서를 수호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범인이 폭력을 사용하더라도 끝까지 규칙을 지키며 법을 집행했다. 하지만 하리 칼라한은 경찰관 뱃지와 총을 휴대했을 뿐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신분을 덮어 버리면 누가 악당이고, 누가 경찰관인지 구분 짓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 같은 ‘더티 하리’ 시리즈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황야의 무법자’에 등장하는 떠돌이 무법자가 모델이다. 이름 없는 무명의 총잡이는 몸값을 많이 쳐주는 주인을 위해 헌신할 뿐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지 않는다. 전통적안 관습이나 규범을 무시하는 ‘무법자’는 필요하면 여자에게도 주먹질을 하고 어린아이에게도 총을 겨눈다. 관습과 규율을 깨는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가득한 ‘무법자’ 영화들은 그래서 한동안 선풍을 일으켰다. ‘더티 하리’는 바로 그런 무법자가 도시의 수호자로 변신한 셈이다.

마석도 형사같은 영웅 이미지에 열광하는 트렌드는 그 사회에 역설적으로 답답하고 불안한 심리가 만연해 있음을 반영한다. 요즘처럼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 큰소리 치고 공권력의 집행자인 경찰이나 검찰이 조롱받는 세상은 처음 보는 모습이다. ‘범죄도시’의 흥행 성공은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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