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왜 지금 우리 춤·우리 소리를 예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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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중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건 춤과 국악 장르
K팝 앞세운 지금까지의 한류는 제1단계 출발점에 불과
곧 우리 춤·우리 소리 DNA 장착한 2단계 한류 시작될 것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6 06:31:20

요즘 세상에 우리 소리·우리 춤 얘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건 숫제 행운에 속한다. 그쪽에 밝은 사람이 너무도 극소수인 탓이다. 그 점에서 지난주 언급했던 공연예술계의 대모 양혜숙(88)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내게 특별하다. 그는 연극이 전공이면서도 우리 춤과 국악은 물론 전통굿판을 포괄한 이른바 ‘한극(韓劇)’의 깃발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야 일간신문 문화부 기자 출신이니까 관심사의 상당 부분이 그와 일치한다. 얼마 전 그와 나눈 대화도 유쾌·상쾌·통쾌했다. 화제가 잠시 밀양북춤의 하용부(69)로 흘렀다. 북춤은 북을 메고 엉거주춤 선 채로 어깨춤을 건들대는 게 전부인데도 흘러내리는 멋스러움은 말도 못 한다. 놀란 건 하용부 얘기를 꺼낸 내게 양 명예교수가 하용부의 할아버지 하보경(1906년생)으로 응수한 대목이다.

“하보경의 북춤은 손자 하용부와 또 달라요. 물론 내가 만난 진도씻김굿의 박병천도 북춤을 아주 잘 췄지. 그런데 박병천의 북춤을 보면 왠지 나도 따라서 할 수 있을 듯도 한데, 하보경 북춤은 감히 흉내도 못 내는 그런 수준이에요. 그 은근한 멋과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야말로 어마어마해.”

할 말이 없다. 그와 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단 2005년이던가?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이 바닥의 재주꾼 진옥섭이 기획한 ‘전무후무 춤판’에 등장했던 문장원(동래입춤)·이매방(살풀이)·장금도(민살풀이) 등 6명의 춤꾼 무대를 본 것이 지금도 내 눈에 훤하다. 그분들 모두가 고인이 됐지만 놀랍게도 당시 그 6명 춤꾼의 평균 나이가 80세를 넘겼다.

그 연세에 무대에서 춤을 췄다고? 아무렴, 되고도 남는다. 그분들은 모두가 최고의 우리 춤을 선보였고, 관객은 요즘 말로 완전히 지렸다. 기방에 드나들며 배운 문장원 동래입춤의 솜씨도 엄청났지만 하이라이트는 권번(券番) 출신 장금도였다. 긴 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 그래서 민살풀이는 담박하면서도 순정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게 우리 춤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춤이란 춤은 엉덩이를 흔드는 법인데, 우린 차원이 다르다. 국악도 마찬가지. 한 번 귀가 뚫린 이라면 가히 신선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 빼어난 구음(口音·입으로 선율을 소리내는 것)을 남겨 준 국창 만정(晩汀) 김소희·격조 높은 정가(가곡·가사·시조 등의 성악곡) 장르 김월하의 맛을 아는 이가 지금 조선 천지에 몇이나 될까.

어쨌거나 또 다른 구음을 선보인 진도 무당 김대례를 나는 내 마음속 최고의 남도명창으로 친다. 중앙 무대에선 무명인 그의 실력을 양혜숙 명예교수도 인정해 줘서 놀랐다. 그리고 듣는 순간 뼈가 녹진녹진해지는 최고의 정선아리랑 녹음을 남긴 경서도소리(평안도·황해도 지방의 민요) 명창 김옥심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누구나 ‘하늘이 내린 소리’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인간문화재가 못 돼 막걸리로 한풀이를 하다가 작고했으니 그 또한 안타깝다.

무엇보다 창부타령을 부른 경기소리의 전태용(그의 딸 전숙희의 창부타령도 엄청 좋다)의 기막힌 신명을 우리 소리의 어떤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그 맛을 알면 국악을 안다는 뜻이고, 그게 귀에 시끄럽게 들린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고백한다. 우리의 문화유산 중 장르로 보아 가장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것은 춤과 국악이라는 게 내 소신이다.

K팝이 어떻고 K드라마가 저떻다지만 한류의 세계적 확산은 멀었다. 지금 한류는 1단계라서 우리가 서양음악·서양 드라마의 증폭 기능만을 맡고 있지만, 여기에 우리 춤과 국악의 DNA를 장착한 2단계 한류가 곧 시작될 것이다. 그게 세계를 주름잡을 것으로 믿는다. 그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3·4년 전 ‘범 내려온다’로 대박을 터뜨렸던 이날치밴드를 예로 들고 싶다.

판소리 수궁가의 딱 한 대목을 모티브로 해서 그걸 몽환적인 현대적 사운드로 바꾸고 건들대는 막춤과의 비빔밥을 선보였더니 대중은 그만 자지러지지 않았던가. 지금 그 유튜브 영상은 5000만 뷰를 넘어섰다. 대중은 국악·우리 춤 100%짜리 원액은 못 마셔도 5%짜리 칵테일에는 즉각 반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중가수 송창식의 1970년대 명곡인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한 번쯤’ 등도 서양음계 안에 국악적 모티브를 가미해 본 멋진 실험이었고 그게 통했다.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작업도 그 쪽이다. 그리고 우리 소리의 힘을 믿는 건 서도소리에 뿌리를 둔 국악 소녀 송소희·김월하의 뒤를 이을 법한 ‘정가 여신’ 하윤주 등 국악 새내기들이 쭉쭉 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말 다 좋은데 어떻게 해야 우리 소리와 우리 춤을 이해하겠느냐고 사람들이 물을 것이다. 죄송하다. 3대째 덕을 쌓은 집안이 아니면 그게 좀 어렵다. 단 이 글에 등장하는 하보경·하용부·박병천·문장원·장금도의 춤을 자투리라도 유튜브로 감상하실 수 있다. 김소희·김월하·김대례·전태용·전숙희·이날치·송소희·하윤주도 귀에 담아 두시길 바란다. 당장은 낯설겠지만 쌓이면 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