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이의 난세치세(亂世治世)] 통일·안보 시각에서 본 고조선의 역사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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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07 06:31:10

▲ 박정이 (예)육군대장·밀리테크협회 회장·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우리는 9000년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본 제국의 식민지 지배와 삼국통일 이후 1000년 만에 나라가 분단되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근대화와 서구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나라는 주체를 잃어버리고 남을 따라 모방하기에 급급해 외세에 의지하며 생존을 도모해 왔다.

2022년 유엔이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했는데, 우리 국민은 아직도 1960·70년대의 후진국·약소국 인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결코 초라하지 않다. 원래 압록강·두만강 이남으로 쪼그라든 반도국가도 아니었다. 만주·내몽골·한반도·일본열도·하북성·산동성과 발해만은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찬란한 역사 무대였다.

환국·배달·조선의 7000년 역사가 전개된 한민족 상고사는 단군조선이 문을 닫은 후 북부여를 필두로 한 열국시대로 이어졌다. 열국시대는 동북아 대륙과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던 단군조선의 몰락으로 야기된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한민족이 여럿으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북부여·남부여·남삼한 등으로 이루어진 열국시대는 그 후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의 고구려와 백제·신라·가야의 4국 시대를 거쳐 북쪽의 대진(발해)과 남쪽의 통일신라가 대치한 남북국시대로 이어진다. 이후 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한국사의 국통이 이어져 오늘날 남북 분단시대에 이르고 있다.

우리 고대사의 강역은 한반도·만주·중국 북동부 및 열도 등을 포함한다. 신·당(新·唐) 전쟁 시 신라는 요동반도 대부분과 요양까지 차지하면서 당나라를 물리쳤고, 대진국(발해)은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했다. 고구려와 중국 왕조의 경계는 영정하(永定河)-역수(易水)-당하(唐河)의 순으로 변하였으며, 백제와 신라의 고향은 바오딩(保定)시 동남쪽의 황하(黃河)와 제수(濟水)로 둘러싸인 한(韓) 지역이다. 우리가 한(韓) 지역을 잃어버린 결과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 영토를 대부분 잃어버리게 되었음은 물론 환국-배달국-고조선-북부여에서 열국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확보하지 못하여 우리 상고사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단군조선은 신화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아홉 개의 제후국을 거느린 동아시아 최초의 제국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에는 ‘단군고기’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며, 단군이 통치하던 나라는 조선·시라·고례·남옥저·북옥저·동부여·북부여·예와 맥 아홉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군조선은 환국(桓國)에서 출발하여 진(秦)·한(漢) 이전에 이미 제국으로 발전한 동아시아 첫 제국이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을 제후를 거느린 제국으로 설명한 기록이 우리나라 세종실록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 내용은 중국 문헌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중국 명나라 오명제(吳明濟)는 ‘조선세기(朝鮮世紀)’라는 책에서 단군의 건국 사실을 전하면서 “구이군지(九夷君之)”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단군을 아홉 개의 동이(東夷) 부족국가들이 추대한 군주로 설명한 것이다.

우리에게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했던 군자의 나라 고조선이 없었다면 우리는 중국 한문화(漢文化)의 아류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발해의 모퉁이에 있었던 요서 조선(朝鮮)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반도에 뿌리를 둔 반도국가에 불과하다. 고조선은 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중국을 능가하는 선진적인 차원에 도달해 있었다. 한국인에게 있어 고조선은 긍지와 자존심의 상징이다. 고조선은 우리 민족 건국의 출발점인 동시에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나라였다.

우리는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진정한 광복은 이룩되지 못했다. 국권의 회복을 이루고 국토와 민족은 광명을 되찾았지만 역사 광복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바른 역사관의 정립·식민사학의 청산·국사교과서 개정·동북공정 대응 등 실로 국가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역사·문화적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고구려뿐 아니라 상고사 및 고대사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기 전에 국가의 계보를 정리하고 국가별 강역을 찾아 사서의 기록으로 보존해야 한다. 동북 3성은 중국의 한족(漢族)·한국의 한민족(韓民族) 및 여러 북방 민족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여러 사서에 나와 있는 국가 계보를 정리하고 중국의 동북부와 만주·몽골·한반도를 관장한 우리 조상들의 역사 강역을 찾아 이를 정사(正史)로 보유해야 한다. 중국은 환국·배달·조선과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원했지만 우리는 중국 북·동부와 만주·한반도 모두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관장하여 통일 민족국가 건설의 비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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