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36살 ‘작은 거인’ 신지애의 감동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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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투어 등 64승 기록… 우승 경쟁중
16살때 어머니 여읜 뒤 골프와 훈련에 올인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18 06:31:00

프로 데뷔 18년째인 ‘작은 거인’ 신지애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선수와 팬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다. 신지애가 현해탄을 건넌 지 벌써 10년째다.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올시즌에도 JLPGA투어에서 두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대단한 자기관리와 절제·노력·지혜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동료 선후배들이 ‘지애상’이라고 부르면서 앞다퉈 롤 모델로 삼으려고 한다.

7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코스에서 끝난 제78회 US여자오픈에서 신지애는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했다. 4년 만에 출전한 이 대회에서 신지애는 전성기 못지않은 정확성과 집중력을 앞세워 우승 경쟁을 벌이며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골프선수로서 불리한 신체 조건에도 정글과도 같은 프로골프 세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버텨 내는 것도 대단한데 심심찮게 우승을 거두기도 하고 우승 경쟁을 벌인다는 게 경이롭다.

메이저 중에서도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장타자들 틈에서 끝까지 우승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노장축에 속하는 36살에 키가 155cm에 불과한 그가 거둔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이전 US여자오픈 최고 성적은 2010년 공동 5위였는데 13년 만에 넘어섰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며 팬들 반응이 뜨거울 수 밖에 없었다.

신지애는 200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한 뒤 대상·신인왕·상금왕·다승왕·최소 타수상 등 주요 개인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 거둔 9승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후 2008년까지 3년 연속 상금왕·다승왕· 최소 타수상을 휩쓴 뒤 미국 무대를 노크했다.

신지애는 2013년까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통산 11승을 올리고 2014년 미국을 떠나 일본 투어에 전념했다. 2010년 세계 랭킹 1위에도 올랐던 신지애가 일본투어로 떠난 것은 “오로지 살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에서 손바닥 수술과 허리 부상 등에 시달렸고 스윙 교정을 시도했다가 감각을 잃어 부진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압박감에 시달렸던 그는 일본에서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선택했다. 음식을 아주 천천히 먹는다. 경기를 앞두고는 한 시간에 걸쳐 식사할 정도다. 강박관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도쿄 집에는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만큼 살림살이가 거의 없다. “예전엔 집이 짐을 보관하는 하우스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는 홈을 갖게 됐다”고 했다.

▲ 신지애가 4년 만에 출전한 제78회 US여자오픈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8년 일본 투어 사상 최초로 한 시즌 메이저 대회 3승 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시즌 평균 타수 70타 벽을 처음 깼다. 2023시즌에도 상금 순위 2위인 그가 열 살 이상 어린 후배들과의 경쟁을 뚫고 1위에 오른다면 한·미·일 3개국 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하는 전인미답의 선수가 된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한 신지애는 프로 통산 64회 우승을 기록 중이다. 한국에서 20승, 일본투어 28승, 미국투어 11승을 올렸다. 같은 88년생 세리 키즈인 최나연과 김하늘은 이미 은퇴했지만 신지애의 우승 경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남 영광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던 목사의 딸로 태어난 신지애는 중3 때 이모의 생일잔치에 가던 어머니가 트럭 뺑소니 사고로 숨지는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어머니가 몰던 차에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두 동생도 온 몸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꼬박 1년간 입원해야 했다. 그때 받은 어머니의 사망보험금을 아버지는 딸의 훈련비에 올인했다. 그는 함께 중상을 입은 동생들을 돌보며 피눈물 나는 훈련을 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을 지독한 연습과 강한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증명해 보이는 선수가 바로 신지애다. 여자 골프 선수들은 30세가 넘으면 십중팔구가 은퇴를 고민하지만 신지애는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꾸준한 연습과 시간을 더 늘린 체력 훈련만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더구나 신지애는 드라이브 샷 비거리도 240~250야드 안팎으로 이른바 ‘짤순이’다. 골프에서 아주 중요한 비거리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부단한 노력이 강한 경쟁력의 원천이었을 게다. 그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를 짐작케 한다.

신지애의 골프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다.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15층 아파트를 1층부터 1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훈련을 시킨 아버지였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6위에 올라 있는 신지애가 모처럼 고국 무대에 선다. 19일부터 파주 서원힐스CC에서 열리는 국내 유일의 LPGA투어인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하는 것이다. 신지애가 고국 팬들에게 또다른 감동 스토리를 전달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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