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박인비 ‘체육 대통령’ IOC 선수위원에 한 발짝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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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 못지않은 영어가 최대 강점
선수위원 3대째 이어야 하는 부담감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06 06:31:00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박인비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메이저 대회 4개 우승)을 뛰어넘어 ‘골든 그랜드슬램’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여자 골프가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 역사적인 의미가 아주 컸다. 초대 챔피언으로 두고두고 칭송될 수밖에 없다.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서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양팔을 높이 치켜들며 환호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박인비는 LPGA투어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일궜고, 2016년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하는 등 프로골퍼로서 거의 모든 것을 다 이뤘다. LPGA에서 역대 상금으로만 4위에 해당하는 1826만2344달러(약 237억4000만 원)를 벌어들였다.

LPGA 투어에서 21승(메이저대회 7승)에 빛나는 박인비가 골프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24 파리올림픽 기간 중에 열리는 새 IOC 선수위원 선출 투표에 출마할 한국 후보자로 박인비가 얼마 전 추천됐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박인비가 심층 면접에서 평가위원회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기존에 선수위원으로 활동하던 2004 아테네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리스인 유승민 위원의 임기가 내년에 끝나면서 한국은 새 IOC 선수위원 후보를 낼 수 있다. 당초 지원자는 박인비를 비롯해 김소영(배드민턴)·김연경(배구)·이대훈(태권도)·진종오(사격)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모두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쟁쟁한 스타들이다.

▲ 박인비가 지난달 10일 대한체육회 IOC 선수위원 평가위원회 면접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8년 경기도 성남에서 출생하고 자란 박인비는 1998년 7월 박세리가 US여자오픈 경기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에 입문한 대표적인 박세리 키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지 않게 골프를 배울 수 있었던 박인비는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났다.

박인비는 미국으로 건너가 네바다 주립대 리노 라스베이거스캠퍼스 호텔 경영학과를 마치고 선수생활도 주로 미국에서 했기에 영어가 유창하다. LPGA투어를 뛰고 있는 그의 미국 집도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미국에서 귀국해 친할아버지와 함께 라운드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는 ‘골프 여제’다.

2006년 LPGA에 데뷔한 박인비는 이제는 그의 우상인 박세리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세리 우승 이후 꼭 10년 만인 2008년 최고의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지만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이후 부진을 겪다가 재기하며 2013년 메이저대회 3승을 포함 총 6승의 기록으로 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박인비는 2013년 7월 제68회 US 여자오픈을 제패한 뒤 미국의 대표적 공중파 프로그램인 NBC 투데이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NBC 투데이쇼는 미국에서도 저명인사만 나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골프선수로는 박인비가 첫 출연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박인비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영어 실력은 자타가 인정할 정도였다.

2014년 10월 국내 유일의 LPGA투어인 하나외환 챔피언십에 출전했을 때 짬을 내 스윙코치이던 프로골퍼 남기협 씨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남기협 코치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임진한 프로의 소개로 둘은 만났다. 남씨는 엄청난 슬럼프를 겪으며 드라이버 티샷 입스가 온 박인비의 스윙을 바로잡아 준 주인공이기도 하며 LPGA 투어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외조를 아끼지 않는다.

IOC와 선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게 임기 8년의 선수위원이다. 선수위원은 21명에 달하며 엄연한 IOC 위원이다. 전 세계에 115명밖에 안 되는 영광의 자리다. ‘체육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IOC 위원의 대우는 무급이지만 세계 어디서든 국빈 대우를 받는다. 올림픽 개최지·종목 결정·올림픽 발전 제도를 심의 의결하는 게 그들의 주요 임무다.

유승민 위원을 포함해 4명의 임기가 내년 8월 올림픽 때 만료된다. 선수위원은 파리올림픽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들의 투표로 선정된다. 선거에 도전하는 후보군은 총 16명으로 알려져 4대1의 경쟁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의 정치나 이념을 초월한 IOC의 특성상 선수위원 선거전은 정부나 체육회 같은 외부 도움을 받기 힘들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선거전을 펼쳐야 한다. 유승민 위원은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만나는 선거운동을 위해 걸어다닌 거리가 무려 450㎞에 달하고 선거 기간 중 체중이 6㎏ 빠졌다고 한다. 2004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에 이어 선수위원 3대째를 이어 가야 하는 게 박인비의 몫이다.

필드에서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며 경기를 할 때 늘 조용한 이미지를 보였던 그였지만 앞으로 열정적인 선거 활동으로 선수위원 투표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를 바란다. 한국 스포츠도 이제 스포츠 행정과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능통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를 IOC 선수위원으로 가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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