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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커크의 암살로 미국 사회에 패인 깊숙한 골이 더욱 극명히 드러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진영에서 그의 죽음을 이토록 애도하는 맥락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현 상황에 대한 문명사적 이해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선택에 필수적이다.
치밀한 논리와 조곤조곤한 말투로 동성애·낙태 등 민감한 문제들을 무수한 토론에서 다뤄 온 커크에게 ‘극단주의자’ ‘극우 꼴통’이라는 낙인이 붙어 있었다. 그 원인을 한 네티즌이 풍자적으로 정리한 바에 따르면 커크가 ‘결혼’ ‘출산·육아’ ‘신앙’ ‘애국’의 가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가족·가정·교회·국가의 부정 및 해체로 이어질 젠더이데올로기를 그래서 커크는 절실하게 반대해 왔다.
서유럽에선 동성애 거부가 반인권 극단주의 취급을 받게 된 지 40년이 넘었다. 미국에선 약 20년 전부터고, 그런 싹을 틔운 한국의 경우 확장 기회만 노리고 있다. 동성애 보호를 현실화시킬 법제 장치를 위해 이른바 ‘보편적차별급지법 제정’ ‘건강가족법 개정’에 힘쓰는 사람들이 있다.
트럼프 진영 인사들은 고인을 비하·조롱한 언사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예고했다. 국무부가 그런 외국인의 입국 금지까지 발표하자 한국 매체들이 커크를 ‘우파 인플루언서’ ‘트럼프 지지자’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15일 커크의 팟캐스트(찰리 커크 쇼) 진행자가 된 J.D. 밴스 부통령은 방송 모두에 “대체 불가한 사람을 대신하게 됐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말했다. 커크로 인해 트럼프 진영에 청년들이 유입됐으며 트럼프에게 밴스를 부통령으로 추천한 것도, 밴스에게 한미동맹의 의의를 전수한 것도 커크였다.
21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애리조나는 커크가 2012년 18세 때 설립한 터닝포인트USA의 본부 소재지이자 전국 활동의 거점이다. 최대 수용 인원이 7만3000명인 장소에서 트럼프 참석하에 보수의 세 결집이 확인될 전망인데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각성 운동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기득권 종교로서의 추악한 일면이야 세계사에서 다들 배웠겠지만 기독교가 종교개혁과 이후 여러 차례의 신앙회복 운동을 통해 위기를 돌파한 사실도 알아야 한다. 청교도정신에 기반한 미국 건국, 웨일즈 대부흥과 20세기 중·후반 미 서부 교회들 중심의 3차 대각성 운동이 있었다.
커크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며칠 새 120만 명 이상 늘어 511만 명을 넘어섰다. 15일 연방의원들 주도의 추도식 영상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덕분에 교회에 나간다” “찰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등 신앙고백이 넘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좌·우(기독교·반기독교) 관점의 격돌이 부각되고 있다. 커크의 죽음 자체가 세계관 충돌로 빚어진 것이다. 커크가 유물론적 가치관에 맞서 가정·국가를 개인의 신앙적 삶과 엮어 내려 했다는 점에서 지지자들에겐 ‘순교자’이지만 다른 편에선 이런 관점을 불쾌해 하거나 분노한다.
이 모든 것을 지난 30여 년 세계화(글로벌리즘) 부작용의 수습 노력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커크·트럼프의 접점이 보이며 작년 대선 때 트럼프에게 압승을 안긴 미국을 파악할 수 있다.
현실 공산·사회주의 체제는 무너졌으나 사상은 탈(脫)이념화된 얼굴로 돌아와 사람들 속을 파고 들었다. 환경지상주의, DEI(다양성·평등성·포용성) 정책 등도 그 연장선에 있다. 성(性)해방과 LGBTQ(레즈비언(Lesbian)·게이(Gay)·양성애자(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의문제기자(Questioning) 등 성소수자 커뮤니티)엔 더욱 관대해진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났다. 그 한 세대의 시간은 미 제조업이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떠나면서 마약과 실업 급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사이 정의는 주로 ‘백인 남성 이외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형태로 구현됐다.
작년 대선 때 카멀라 해리스 전임 바이든정부 부통령이 예기치 않게 민주당 후보로 추대된 후 우리는 능력·자질보다 ‘비(非)백인 여성’인 것이 출세의 최대 강점일 수도 있었을 시대상을 복기할 수 있었다. 한편 ‘힐빌리’(백인쓰레기) 출신 J.D. 밴스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통해 트럼피즘의 호소력을 높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중산층 살리기이며 기독교 부흥과 무관치 않다. 어린 밴스의 가난과 불운은 부모의 실직이 초래한 것이었고 이는 1990년대 이래 득세해 온 글로벌리즘의 역작용이기도 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초엘리트층이 승승장구할 때 중산층 몰락과 함께 미국은 내적으로 깊이 망가져 갔다.
미 달러가 대다수 국제기구·단체를 먹여살리고 미군이 전 세계 통상로를 지키는 동안 천문학적 재정적자가 달러 찍어내기로 메워졌다. 그 사이 납세자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현실을 ‘불구가 된 미국’으로 인식하며 나라살리기(애국)에 나선 인물이 트럼프였다. 서민을 위한 먹고사니즘뿐만 아니라 가정·교회·국가의 선순환 관계를 무너뜨린 것들과의 이념·문화 전쟁도 트럼피즘의 큰 일부다.
취임 첫날 “미국에 성별은 남·녀 단 두 가지”라고 선언한 트럼프, 작년 대선 직후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향해 “인류 문명을 연장시켜 줘 고맙다”고 한 것을 기억하자.
이는 생물학적 성별의 부정을 통해 세상을 재편하려는 젠더이데올로기, 지난 500년을 ‘백인 남성 패악의 역사’로 뭉뚱그린 비판적 인종 이론, 그것들을 실행에 옮긴 캔슬문화의 파괴적 속성을 돌려말한 것이었다.
트럼피즘은 이런 현실에 대한 저항이다. 커크 역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이유로 대학이 특정 도그마를 주입하는 장으로 화한 현실을 짚은 바 있다. 생전의 커크가 대학 순회 자유토론를 벌인 것, 트럼프가 명문 대학들과 싸우는 것 또한 동일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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