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º
습도 45%
강릉 17º
습도 60%
제주 18º
습도 75%
)
아는 내용이고 별 의미 없는, 습한 곰팡내 나는 내용들이었다. 희숙은 2차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 변태섭 일행은 호프집을 나와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캔맥주 몇 병과 음료수를 샀다. 희숙은 속으로 그렇게 마시고 또 마시려나 했다. 푸른 점퍼는 술에 취했는지 갈지자로 걸었다. 변태섭과 노조위원장은 길에 서서 귓속말을 나눴다. 둘은, 가끔 힐끔거리며 희숙을 쳐다봤다.
노조위원장이 앞장서 걸었다. 처음 갔던 월미횟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월미횟집 뒷골목에 노르스름한 간판에 빨간 글씨로 월미여관이 보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월미여관을 향했다. 희숙은 술에 취한 푸른 점퍼를 재우려 한다고 생각했다. 노조위원장이 먼저 여관 입구로 가 돈을 지불하고 열쇠를 받았다. 노조위원장이 앞장섰다. 희숙은 여관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푸른 점퍼를 노조위원장에 맡기고 변태섭은 나오겠지, 했다. 노조위원장과 변태섭이 희숙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희숙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변태섭이 희숙한테 다가와 손을 잡았다. “괜찮아, 잠깐 들어가. 몸 좀 녹일 겸.”
희숙은 태섭이 있으니 별일 있겠나 싶으면서도 여관으로 들어가는 건 께름칙해 발걸음이 무거웠다. 입구부터 이상한 냄새가 진동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술에 취한 푸른 점퍼는 걷기도 힘든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희숙이 그를 부축하려 하자 변태섭이 희숙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냥 놔두란 시늉을 했다.
노조위원장은 201호 앞에서 멈췄고 방문을 열었다. 노조위원장이 손짓으로 레이디 퍼스트, 먼저 들어가란 시늉을 했다. 희숙이 들어갔고 노조위원장이 신발을 벗었다. 이상했다. 변태섭은 움직이지 않았다. 변태섭은 문밖에 서서 희숙을 바라봤다.
희숙이 �見纛� 표정으로 서 있으니까 노조위원장이 희숙의 어깨를 눌러 앉히려 했다. 희숙은 노조위원장의 손을 뿌리치고 천천히 변태섭에게 다가갔다. 희숙은 모든 증오를 담아 변태섭을 쏘아봤다. ‘설마. 그냥 보내기 아깝다는 게 그거였어?’ 변태섭은 그런 희숙의 표정을 읽었다. 변태섭의 무표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변태섭이 희숙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서울대 선배야, 잘해 드려. 희숙은 경악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쿵쾅거렸다. 가슴에서 증오가, 머리에서 경멸이 올라왔다. 저주의 눈으로 그를 뚫어 보았다. 정작 변태섭은 미동이 없었다.
희숙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밀려오는 환멸과 감당할 수 없는 자책의 눈물이었다. 희숙은 자신에게서 더 이상 견딜 희망조차 남지 않은 패자의 모습을 보았다. 변태섭은 팽팽히 늘어난 고무줄을 가위로 무자비하게 끊어 버렸다. 희숙의 정신은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이었다. 희숙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버틸 힘이 없었다. 변태섭은, 굶은 사자에게 먹이 던지듯 희숙을 방에 던져 놓고 파르르 떠는 그녀의 눈을 보며 느릿하게 방문을 닫았다. 희숙은 문이 닫힐 때까지 그의 눈을 따라갔다. 자비는 없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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