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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47> 동독·中·蘇·美 정보기관 농락한 4중 간첩 ‘시멩 부부’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15 00:02:5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세계 첩보운동사에서 전무후무한 부부 스파이가 있다. 이들 부부는 동독·소련·중국·미국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각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최고 수준의 예우와 함께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며 무려 23년간이나 암약해 왔다. 각국 정보기관은 이들 부부를 충성스러운 스파이로 평가하고 예우했으나 실제는 4중 스파이로 활동하며 각국 정보기관을 농락해 왔다.
 
후 시멩(Hu Simeng·여·1936년생)은 1966년 중국 베이징대 대학원생 시절, 중국 방언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 유학 온 동독 훔볼트대학 대학원생 호르스트 가스데(Horst Gasde)를 만나 사랑에 빠져 1년 후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동독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언어학 교수로 채용되어 귀국할 때 같이 동독으로 갔다. 이때 이미 시멩은 중국 정보부에 포섭된 정보원이었다. 당시 중국 상황에서 어려웠던 국제결혼이나 외국 이주가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남편 가스데는 대학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동독 국가안전부(Stasi·슈타지)에 정보원으로 인입되었다. 그의 임무는 외국에서 훔볼트대학에 유학 온 학생들, 특히 중국 유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었다. 당시 동독 슈타지와 특히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중국에 정보망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 유학생 등을 포섭하는 공작에 주력했다. 
 
가스데는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동독 주재 중국 외교관과 사업가들에게 독일어 개인 과외 교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 시멩을 정보원으로 추천했다. 이때부터 시멩 부부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정보 활동을 전개했다. 슈타지가 이들에게 매달 제공한 공작비는 동독 일반 주민의 1년 치 월급에 달했다. 또한 자유롭게 서독을 방문할 수 있는 특권도 얻었다.
 
시멩 부부가 포섭했다는 중국 외교관이나 유학생들은 독일로 파견되기 전 이미 중국 정보당국에 포섭된 정보원이나 협조망이었다. 이들 부부는 동독과 중국 정보기관의 이중 스파이였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동독도 중국도 환호했으며 시멩 부부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했다. 시멩 부부는 동독 슈타지에게 중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포섭 제의를 받았다고 보고하고 중국 정보부에도 똑같이 말했다. 양쪽 정보기관들은 모두 환호하며 이를 기회로 삼아 포섭에 응한 후 활동하며 상대방의 정보를 빼내라고 지시했다. 
 
▲ 시멩 부부 스파이 사건을 소개한 ‘스파이사전’(2015년판·41∼42쪽). 필자 제공
시멩 부부는 동독에 자신이 접촉했던 중국 스파이의 신원을 제공하였고, 중국에는 동독 스파이의 신원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하자 이들 부부는 양쪽 정보기관에 교묘한 허위 정보와 기만 정보를 제공해 돈을 챙기고 상대방을 교란시켰다. 
 
동독은 시멩 부부가 제공한 중국 정보를 소련 KGB에  그대로 전달했다. KGB도 시멩 부부를 신뢰하며 중국 관련 정보를 이들에게 의존했다. 정보원 신원 보안의 최고봉인 KGB도 시멩 부부의 기만 정보에 놀아난 것이다.
 
시멩 부부의 3중 스파이 공작에 1978년 미국 중앙정보국(CIA)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4중 스파이 게임이 시작되었고 결국 복잡하게 꼬여 버렸다. 
 
슈타지는 CIA 베를린 지부를 상시 도청하며 약한 고리를 파악하고 미끼를 던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전 세계 CIA지부에 중국인 정보원 포섭 공작 지령을 하달했다. 동독 슈타지가 CIA 베를린 지부에 던진 미끼는 ‘시멩’이었다. 
 
당시 서베를린에는 서방세계뿐 아니라 중국의 신문·잡지·책자 등을 판매하는 한 대형 서점이 있었는데 베를린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했다. 슈타지는 시멩을 거의 매일 이곳에 보내 이용토록 했다. CIA 베를린 지부 요원은 이곳에 자주 드나드는 젊은 중국 여성을 주목하고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렸다.
 
어느 날 시멩에게 한 미국인이 자신을 동유럽 정치를 다루는 연구소의 연구보조원 ‘마이크’라고 소개하며 접근해 왔다. 그 미국인의 독일어가 시원치 않자 시멩은 영어로 소통하자고 했다. 그 미국인은 시멩에게 중국과 동독에 대한 의견을 묻고,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자기가 연구소 학술지에 중국 정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하면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시멩은 처음엔 별 관심이 없는 듯 빼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만난 자리에서 시멩은 제안을 마지못해 수락하는 양 연기를 했다. 드디어 CIA가 미끼를 물었다. 이 미국인은 CIA 베를린 지부의 요원이었다.
 
▲ 시멩 부부 스파이 사건을 최초로 소개한 어니스트 볼크만 저 ‘스파이 활동: 20세기 최고의 스파이 작전’(뉴욕: 와일리, 1995). 이 책은 국내에서도 2003년 번역판이 출간된 바 있다. 필자 제공
이후 시멩은 CIA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정기 급여를 받았다. 3년 후 남편도 CIA 급여 명단에 올랐다. 이들 부부는 8년 동안 CIA에게 같은 수법으로 중국 정보요원 신원과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 동독·소련·중국에게도 미국 CIA요원의 신원사항 등을 제공했다. 
 
이들 부부가 제공한 정보에는 자신들이 접촉한 7명의 CIA 요원의 신원 정보와 최소 6개의 CIA 안전가옥의 위치와 배치도 등이 포함돼 있었다. 슈타지와 KGB 동맹은 여기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CIA 지부의 동향을 상세히 파악했다. CIA 현지 요원은 시멩을 영입하면서 정보망 구축의 다급성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 검사 등 CIA의 정보원 인입 표준 절차를 생략해 버렸다. 
 
시멩 부부의 정체는 1990년대 들어 동독과 소련이 붕괴되고 슈타지 관련 비밀 문서가 기밀해제되면서 드러났다. 이 사건은 골드만델이 2015년에 저술한 ‘CIA: 비밀 작전·정보 수집 및 스파이에 관한 백과사전’에 간략히 소개되었다. 
 
전 세계 핵심 정보기관을 농락하고도 건재한 시멩 부부는 스파이 역사의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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