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심걱정이 삶에 더 근원적 요소인지, 愛(사랑 애)보다 憂(근심 우)자 역사가 훨씬 길다. 애(愛)는 갑골문에 없고 너무 많이 변해 현재의 글자체로 의미 근원을 따지기 어렵지만, 주나라 청동기 금문(金文)에 처음 등장할 즈음 이미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한 글자가 돼 있다. 즉 입을 크게 벌린 채 뭔가를 토로하는 광경인 ‘목메일 기(旡)’, 그 아래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이 보인다.
반면 갑골문의 우(憂)는 괴로운 듯 손으로 머리를 감싼 모습이며, 훗날 하단에 추가된 ‘천천히 걸을 쇠(夊)’로 고민하느라 서성대는 느낌이 더해졌다. 이렇게 애(愛)와 우(憂)가 사실상 연결된 심리라는 문자학적 흔적 또한 흥미롭다.
‘애국’이란 표현이 들어 있는 기록 중 가장 빠른 것은 기원전 1세기 ‘전국책(戰國策)’이다. 전국책은 기원전 5세기부터 약 200~250년간 이어진 혼란기의 12개국 책사·유세가들의 언설과 정책 제안 등이 담긴 서적으로, 그 시기를 ‘전국’(전쟁 국가) 시대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책 이름에서 유래한다. ‘우국’이란 표현은 8세기 안록산의 난을 전후해 당나라 시편에 보이기 시작했으며, 11세기 북방 이민족에 시달리던 송나라 이래 ‘애국우민’(憂民) 형태로 유행하게 되었다. 조선왕조 실록엔 ‘애국’ ‘우국’이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15세기 후반의 기록에 자주 나온다.
영어 등 여러 서구어에선 애국·우국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 라틴어 ‘아버지(patris)’가 어원이며 ‘아버지(조상)의 나라’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정서적 일체감이라는 어휘적 배경을 가진다. 네이션의 진전 속도로 볼 때 18세기 최고 선진국이던 프랑스에서 애국심은 ‘달콤 열렬한 동시에 가장 영웅적인 감정’ ‘이성 간 사랑보다 훨씬 열광적인 희열’(장자크 루소)로 설명됐다.
백성 아닌 국민으로서의 주권자들, 국가에 대한 이들의 의무·책임감 성숙과 함께 형성된 애착과 자기 규율이 근대적 의미의 애국심이다.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만 진정한 애국이 성립한다. 자유의 토대 없는 애국심이란 원초적·맹목적이며 패권주의·권위주의와 어울려 억압 그 자체가 되기 십상이다. 권리·의무·책임 의식을 동시에 장착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만 자유인의 공화국을 유지할 수 있다.
애국은 우국일 수밖에 없다. 애(愛)·우(憂)의 대상인 ‘국(國)’의 정체와 본질이 핵심이다. 인민공화국이냐 자유인들의 공화국이냐를 두고 21세기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대립 중이다. 갑골문 때부터 국(國)은 사각 틀 안에 인구(입 口)와 무기(창 戈)가 들어 있는 형태였다. 이는 국가가 안보공동체로 출발했음을 말해 준다. 다양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안보 이해를 서로 달리하면 같은 나라 사람으로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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