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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감수라는 말은 수명이 10년이나 줄어들 만큼 크게 놀랐을 때 쓴다. 의학적으로도 스트레스와 건강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원시시대에는 맹수와 일대일로 마주치는 것보다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강렬한 스트레스에 직면해 신체에서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 일어난다.
도망가든 싸우든 신체는 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근육으로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증가해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게 된다. 뇌에서는 혈액 속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해 신체가 행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런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은 인슐린 작용을 방해해 혈당을 증가시킨다. 갑작스러운 고혈당은 쇼크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많이 놀라면 ‘간담(肝膽)이 서늘해진다’는 말도 한다. 동양의학에서 간은 화(火)의 기운을 갖고 있으며 감정 조절에 관여한다. 담(쓸개)은 용기에 관여한다. 간과 쓸개가 차갑게 식을 정도로 놀랐다는 뜻이다.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말도 있다. 모골(毛骨)은 털과 뼈를 뜻한다. 너무 놀란 나머지 털끝이 쭈뼛 서고 뼈가 오그라든다는 뜻이다. 즉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 많이 놀라면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 끝에 갑자기 힘이 죽 빠지면서 눈앞이 아득해진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호환(虎患)과 마마가 사라진 지금 세계 최대의 우환은 전쟁이다. 전쟁만큼 인간에게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도 없다. 나의 할머니는 1915년생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겪었다. 피난살이를 통해 기아와 빈곤의 늪에 빠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2015년 생일에 즈음해 세상을 마감했다. 100년을 채워 살면서 할머니는 수도 없이 간담이 서늘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십년감수의 시간도 여러 번이었으리라. 놀랄 때마다 10년씩 수명이 줄어들었다면 할머니는 환갑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오래 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는 늘 피를 깨끗이 간수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먹는 것·보는 것·듣는 것에 신경을 썼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손수 5곡을 섞어 밥을 지어 드셨고 가공식품은 먹지 않았다. 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고 나쁜 이야기는 외면했다.
수명은 뜻하지 않게 줄어들 수도 있지만 본인의 노력에 따라 늘릴 수도 있는 것이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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