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너무나 간단한 인생계산기 작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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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08 06:30:00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친구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무조건 달려가 돕고 내것 네것 안 가리던 우리가 이제는 손익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남인가?’ 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아픔을 함께했던 배달민족이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줄이야!

중장년층에서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가 ‘손절’이다. 손절은 주식 투자에서 쓰이는 말로 ‘손해를 보더라도 적절한 시점에서 끊어냄(매도함)’을 의미한다. 경제 방면에서 쓰이던 이 말이 일상 속으로 들어온 것은 우리의 생활에 경제적 사고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낙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답던 농경 중심 사회에서 초고속화 산업발전을 이룬 탓인 듯하다.

특히 중장년의 경우 한없이 팽창되던 인간관계를 줄이는 추세다. 거기엔 나의 에너지를 빼 가는 사람들은 ‘손절’하라는 심리학자들의 조언도 한몫한다. 이제 우리는 계산법을 배우고 대놓고 ‘계산’을 하게 되었다. 손절은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까지 확장되어 간다. 늙어서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자식과의 관계도 재정비해야 하고 부모에게 무한 의지하려는 자녀는 차단해야 한다고 알려 준다.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부모가 자녀를 챙겨 줄 수 있단 말인가! 자녀의 밑 빠진 독을 채우다 보면 부모의 독도 텅 빈다.

그렇다고 자녀를 포함하여 가까운 사람들의 힘듦을 못 본 척하지도 못하는 게 우리의 마음이다. 결국 계속 고민한다. 어디까지 얼마나 챙겨 주고 참아 주는 게 답인가. 나를 지키느라 손절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마냥 요구를 들어 주면 삶이 힘들어진다.

상호이타성 이론이란 게 있다. 각 개체가 다른 개체를 돕고 아끼며 산다는 것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개체 사이의 이타성을 말한 이 이론은 순수이타성과도 다르다. 순수이타성은 수혜자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테면 크리스마스 씰을 구입하거나 헌혈을 하는 것이다.

반면 상호이타성은 서로 간에 잘 알고 지속적 관계를 맺는 경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종종 어떤 이들은 이 관계를 무너뜨린다. ‘계산’ 관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기피당하는 유형을 몇 꼽아 보면, 식당에서 맛있는 반찬을 싹쓸이하는 인간이나 신발 끈 묶으며 지갑 문 절대 안 여는 인간, 그리고 ‘에너지 하마’도 있다. 상대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징징대며 몇 시간이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다.

그래 놓고는 상대가 힘들 때는 침묵하거나 잠수를 탄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서 도태된다. 특정인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서 나중에는 ‘누구 조심하라’는 말이 비눗방울 처럼 둥둥 떠다닌다.

진짜 문제는 지갑이나 마음을 털린 사람이다. 그들은 결국 ‘하마’들을 손절한다. 내가 ‘하마’에게 투자한 시간·정성·돈·에너지를 아까워하지 않고 이제라도 조용히 그들을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착한 피해자들의 마음은 이미 멍들고 곪아서 2차 피해의 시간이 흘러간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바보지!’ 자책과 원망이 엉켜 돌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병든다. 친밀한 사이의 병폐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과정이 가족 간에도 빈번히 일어난다는 점이다. 부부 사이나 부모·자녀 관계에서 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아니 계산해야 할까. 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다. 계산 원칙은 아주 단순하다. 처음에는 상대를 긍정적으로 대하며 협력한다. 불신병에 걸리면 안 되니까 초반에는 믿고 들어간다. 그런데 상대가 어느 순간 (의도적) 손해를 입히면 호의를 거둔다. 상대가 반성(?)하고 다시 협조 모드로 들어가면 나도 그렇게 하면 된다.

우리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계산기가 무의식적으로 자동기계처럼 돌아간다. 그 계산기의 도움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관계 속 개개인은 등급이 매겨진다. 손절할 주식인지 계속 투자할 주식인지 말이다.

너무 야박하다고? 적인지 친구인지를 따질 능력이 없는 개체는 오랜 진화의 세월 속에서 유전자도 못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니 생존을 위한 판단을 욕할 수는 없다. 인간은 기억력이 뛰어난 동물이고 오랫동안 상호 계약을 맺고 그것을 유지하는 족속이다. 인간의 이러한 능력은 지금까지 이어져 세련된 문명을 만들어 왔고 전 지구적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개인 간이든 단체 사이든 국가 간이든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계산기는 작동하게 되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계산 개념이 없어서 차단당하고 집단에서 아웃되어 도태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계산을 싫어해서 투자한 종목마다 몽땅 털린, 유형적 무형적으로 가난하고 아픈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면 계산을 잘하면서 건강한 관계를 맺고 생존해 가는 존재인가를 점검해 볼 일이다. 상식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