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203]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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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지 않아! 항복하지 않아!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01 06:30:24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천국은 믿지 않았다. 행복하기만 한 세상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옥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상상하는 지옥이란 별처럼 멀리,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만 잔뜩 모아 둔 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 너무나 현실적인 지옥이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지옥은, 지금의 내 삶이었다. 이 삶을 또 한 번 반복하는 것, 혹은 영원히 반복해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나의 지옥이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연꽃 등과 유리병을, 아내가 사라진 현관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꽃등은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거실 바닥에 떨어졌지만 유리병은 제대로 현관문에 부딪힌 다음 타일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작은 파편으로 튀어 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유리 조각 하나가 날아와 박힌 것처럼 눈이 뜨거웠다. 불 인두가 눈 속에 푹, 쑤셔박힌 것 같았다. 나는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망치로 깬 수박처럼, 벌건 뇌수를 흘리며 쪼개질 것처럼 두통이 엄습했다. 화형을 당하듯 발끝에서부터 심장까지 단번에 불길이 솟구쳤다.

고통의 회복이었다. 죽음의 전조였다. 아악. 나는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기어코 쓰러졌다. 스스로 눈알을 뽑아 낼 것처럼 얼굴을 감싸 쥐고, 머리를 움켜잡고, 가슴을 쥐어뜯었다. 거실 바닥을 뒹굴며 구르며 몸부림쳤다. 그때였다. 하운이 12시에 맞춰 놓았던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가 들렸다.

꿈은 마음의 소망, 꿈속에선 슬픔도 잊을 수 있어.

아무리 가슴 아파도 꿈이 실현될 것을 믿어.

나는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욕실로 들어가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앞에 섰다. 내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안압을 이기지 못한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끔찍해서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성게 한 마리가 들러붙어 내 몸을 먹성 좋게 파먹어 가고 있었다. 가시투성이 눈알은 곧 눈 밖으로 튕겨 나와 대롱거릴 것이다. 눈동자에 박힌 가시들은 처음보다 더 지독하게, 지난 이틀 간신히 참았다는 듯, 빠른 속도로 수백 개가 새로 돋아 빽빽하게 빈틈을 채워 놓고 있었다. 그 실뿌리들이 심장을 움켜쥐고 실뱀처럼 뻗어 나와 내 간과 폐와 모든 장기들, 그리고 뇌를 집어삼켜 버릴 것이었다. 나는 세면대를 부서져라, 힘껏 움켜쥐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나는 거울을 깨 버릴 것처럼 그 안에 있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널 지켜볼 거야. 네가 하는 짓을 지켜볼 거야. 외면하지 않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거라고. 두렵지 않아. 외면하지 않아. 항복하지 않아. 너는 날 먹어 치우지 못할걸. 내가 널 굴복시킬 거니까. 맞서 싸워 줄 테니까. 그러니까 와. 와서 날 죽여 보라고. 네가 날 죽인다고 해도 절대로, 절대로 나는 죽지 않아. 죽어도 살 거야. 살아 있고 말 거야!”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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