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인간과 개는 어떻게 함께 살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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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04 06:31:10

강아지를 키운 게 이럭저럭 6년 차가 되었다. 강아지는 우리집 ‘팬옵티콘(panopticon)’이다. 팬옵티콘이란 제러미 벤담이 말한 ‘중심에 위치한 감시자’로서 마루 중앙에서 가족들이 각각 무슨 일을 하는지 매우 유심히 관찰한다.

가족들의 요일별 시간표가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터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변동수가 있는지, 누구는 기분이 어떤지 잘도 알아낸다. 외출할 기미가 보이면 산책가자고 아양을 떤다. 가족들이 좋은 일로 들떠 있으면 자기도 좋아서 방방 뛰어오르고 침울한 일이 있으면 얼른 다가와서 위로해 준다. 말을 할 순 없지만 꼬리와 음성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보고 있자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서로 다른 종인 개와 인간은 어떻게 이다지도 소통이 잘될까.

개는 인간에 의해 순치된 최초의 동물로 알려져 있다. 늑대를 개로 순치한 것은 나중에 다른 동물들을 가축화하는 데 중요한 경험적 발판이 된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개들의 DNA를 늑대·코요테·자칼의 DNA와 비교했는데, 그 결과 개가 늑대로부터 적어도 10만 년 전에 분리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습관이 유전자에 침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만 년이므로 그것을 감안하면 18만5000년 전부터 인간이 개를 순치했다는 소리가 된다.

가혹한 빙하기 세상에서 ‘늑대개’와 인간이 주고받는 상호이익은 분명했다. 빙하기 사냥꾼들은 대형동물을 잡는 협동사냥에서 늑대의 능력을 이용하려 했고, 늑대에게 이 사냥기술을 배우기 위해 새끼 늑대를 데려다 길렀다.

학자들은 늑대가 인간에 의해 선택되는 과정을 자연선택의 진화 과정으로 묘사했다.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한 최초의 늑대들은 다른 늑대보다 사람을 덜 무서워하는 특성을 가졌을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먹이를 얻을 수 있었던 이 늑대들은 먹을 것을 여전히 사냥해야 하는 다른 늑대들보다 유리한 재생산 기회를 얻었다. 이는 자연선택적 압박이 되었다. 늑대를 기른 인간들에게도 이익이 있었다. 늑대는 밤에는 인간을 지키고 낮에는 사냥을 도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을 덜 무서워하는 늑대들은 몇 세대가 흐르면서 개가 되어 갔고, 인간은 개와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는 종으로 진화했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늑대나 개와 교감하며 정을 나누고 개와의 공생관계 속에서 다른 동물을 사냥해 먹으며 살아왔다. 개와의 공생을 통한 대형동물 수렵은 마지막 빙하기에 유라시아에서 현생인류 생존을 도왔다.

또한 늑대와 인간은 둘 다 복잡한 교신 신호를 가진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의 몸짓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히려 늑대들이 인간을 선택했다고 믿는 학자들도 있다. 늑대는 인간의 거주지 경계를 뒤지다가 서서히 안으로 들어왔고 이를 편안히 여겼을 것이다. 늑대가 순치된 개는 인간 거주지 안에 살면서 엄청난 혜택을 얻었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개는 음식쓰레기·사람의 대변·쓰레기 등으로 배를 불렸고 인간의 위생을 책임져 주었다.

그들은 예리한 청각으로 포식자·낯선 자·적들의 접근을 알아채 인간에게 조기경보를 울렸다. 또한 뛰어난 후각으로 먹잇감을 찾아내 사냥을 도왔다. 인간은 개에게 의지한 결과 뇌의 후각 부위가 줄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간이 개의 영역표시를 관찰한 일이다. 인간은 그들처럼 영역을 구획하는 다양한 시각 표시를 만들어 냈다. 긴 진화의 시간 속에서 개는 인간에 의해 600여 종으로 분화되었고 인간은 개에게서 사회적 유대와 영역 수호를 배웠다.

우리가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즘 이혼하는 부부들의 이슈 중 하나가 바로 반려견 양육권이라는 기사를 심심찮게 본다. 물론 반려견은 미성년 자녀처럼 친권이나 양육권 개념이 애초에 없다. 따라서 법원은 반려견 소유자가 반려견을 데려가도록 판결할 뿐이다. 소유권을 판단하는 기준은 처음에 누구 돈으로 반려견을 샀는지, 동물 등록 시 누구를 소유자로 했는지 등이다. 이 기준에 따라 소유자가 밝혀진다 해도 반려견은 민법상 ‘물건’이므로 이혼 시 재산 분할 대상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이므로 다투다가 반으로 가를 수는 없으니 양자의 합의가 요구된다.

인간의 유대와 공감은 부모·자식·친족을 뛰어넘어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사람들과도 가능하고 심지어 인간과 다른 생명체 사이에도 발생한다. 가장 널리 확산된 종 사이의 유대는 인간과 개 사이의 공감이다. 그러니 헤어지면서 서로 간에 개를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싸움이 있을 만하다. 현생인류의 조상과 상당 기간 공생했던 네안데르탈인이 마지막 빙하기에 멸종한 이유는 개를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상기해 보자. 반려견을 단순히 물건으로 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