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옥의 열사일침(烈士一鍼)] 최고급 인력과 벼룩시장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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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30 06:30:44

미국의 한 쇼핑센터. 흑인 청년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더니 이동식 옷걸이에 걸린 수십 벌의 옷을 한 팔로 슈우욱 훑어 어깨에 들쳐 메고 튄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흑인 청년들이 명품 브랜드 신발과 아웃도어 의류를 박스째 들고 튀어나온다. 그런데 쇼핑센터 점원과 경호원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 심지어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도심 한복판에 핫플레이스가 떴다. 벼룩시장이다. 수십만 원짜리 신상품을 단 몇 십 달러에 살 수 있는 곳이다. 잘하면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단돈 100달러에 살 수 있다. 주인은 모두 흑인 청년들이다. 한 평 남짓한 정사각형 돗자리에는 구찌·에르메스·프라다·샤넬·루이비똥 가방과 신발·각종 장신구가 즐비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흑인 청년들 손목에는 대여섯 개의 줄이 돗자리 네 귀퉁이와 연결되어 있다.

손님들이 혹시 가짜라고 의심하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 준다. 자신들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훔쳐 오는 장면이다. 순간 경찰 단속이 뜨면 이들은 손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긴다. 단 0.1초 만에 풍선 모양이 된 돗자리를 어깨에 들쳐 메고 튄다. 잡히지만 않으면 수익이 매출의 100%이니 이들은 상당한 고급 인력이다.

쇼핑센터에 도둑이 날뛰는데도 가만히 있는 이유가 기가 막히다. 10여 년 전 미국엔 범죄자가 많아 교도소가 부족했다. 그러자 2014년 민주당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경범죄와 중범죄 기준선을 400달러(54만 원)에서 950달러(128만 원)로 올렸다. 경범죄에 대한 처벌은 구금 6개월 미만, 벌금도 1000달러 미만이다.

그러니 경찰은 신고를 받아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점원과 경호원들은 행여 도둑을 잡으려다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죽을 수도 있으니 아예 못 본 체한다. 기가 막힌 정책을 통과시킨 민주당의 ‘건의안 47호’로 범죄율은 뚝 떨어졌고 교도소엔 여유가 생겼다. 대신 브랜드 업체들은 매장을 철수했고 유통업체는 쇼핑센터를 접었다. 소비자들은 더 먼 곳으로 쇼핑을 가야 했다. 당연히 지역 경제는 초토화되었다.

2018년 문재인정부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필리핀 이모’를 수입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사업 목적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필리핀 이모는 케어기버(care giver), 즉 가사도우미다. 최저임금 인상은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저출생 문제는 물 건너 가고 만다.

▲ 서울 청계천 옆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사들인 의류 두 봉다리를 들고 흐믓해 하고 있는 필자.

▲ 돗자리 네 귀퉁이마다 줄로 연결된 미국 벼룩시장의 좌판상. 훔친 물건들이라 경찰이 뜨면 들쳐 메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제공

싱가포르에서 50∼60만 원, 홍콩에서 70∼80만 원에 고용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를 우리는 100만 원에 쓸 요량이었으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238만 원을 줘야 한다. 그것도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다. 파트타임으로 4시간만 일해도 120만 원. 국내 4인가구 중위소득(572만 원) 절반에 달한다. 신혼부부에겐 살 떨리는 비용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쓰겠다던 야무진 꿈은 좌절되었다. 100만 원 정도에 갓난아기와 가사일을 맡기려던 신혼부부들은 그 꿈을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맨 먼저 일자리를 잃은 아르바이트 대학생·맞벌이 부부가 아니라 맞교대 부부가 되어 버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겐 이 현실이 그야말로 죽음이다.

문 정부 첫 해인 2017년 출생률은 1.05명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도 임기 말인 2022년엔 0.77명으로 더 줄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필자의 아내가 위기의 천사들을 주말도 없이 24시간 365일 돌보고 키우느라 들이는 노동력을 월급으로 치면 얼마일까. …고급 인력이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신당동 중앙시장엔 중고 집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파리만 날린다. 신당역으로 이어진 중앙재래시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더 살벌하다. 세금 내는 가게는 닫혀 있거나 일찌감치 문을 닫는다. 반면 창신동 동묘에서 시작된 벼룩시장은 신설동 풍물시장을 점령한 지 오래고, 성북천 너머 용두동까지 넘볼 기세다.

추석 명절인데도 청계천 벼룩시장은 초만원이었다. 벼룩시장의 크기와 규모는 몇 년 전보다 훨씬 커졌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소득주도성장·주52시간 근무·최저임금 인상 등 문 정부의 기막힌 정책으로 벼랑 끝으로 몰린 자영업자들과 일자리를 잃은 알바생들이 쪽박을 찬 채 월세도 없고 세금도 없는 벼룩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각각 2년형을 받은 범죄자 이재명과 조국이 이런 모습에 고무되어 “경제에 실패한 윤석열”이라고 떠드는 건 아닐까. 북한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천명하자 문재인과 김정은의 9.19 남북공동성명 6주년에 “통일하지 말자”로 화답하는 임종석의 살인 미소가 벼룩시장을 달군다.

“골라 골라 한 장에 2000원, 3장에 5000원!” 필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길거리 돗자리에 쌓여 있는 의류를 헤집어 내 것과 아이들 옷을 골랐다. 한국말이 유창한 동남아시아 상인이 허리춤에서 검은 봉지를 떼어 내 옷가지를 세어 담는다. 1만5000원을 건네주자 커다란 검은 봉다리 2개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