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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쌀은 식재료 이상이다. 한국인에게 쌀은 생명이요 힘의 원천이며 삶 그 자체다. 우리 조상은 쌀을 얻기 위해 노동을 했고 노동을 영위하기 위해 밥을 먹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뼈 빠지게 노동해도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일은 요원했다. 그런 음식은 생일 혹은 명절에나 구경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쌀밥을 이밥이라고 했겠는가. 이밥은 조선시대 이씨 임금이 내리는 밥이라는 뜻으로 양반의 식사를 뜻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도 있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배고픔을 모른다. 그런 귀신이 허기에 지쳐 탈곡하지 않은 곡식까지 허겁지겁 까먹을 지경이라고 하면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쌀은 귀한 존재요 매사의 중심이었다.
8월18일은 쌀의 날이다. 한자 쌀 미(米)는 벼 이삭을 본뜬 상형문자로 줄기에 낟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벼를 나타내고 있다.
이 글자를 분해하면 八 + 十 + 八이 된다. 쌀 한 톨을 얻는 데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8월18일이 쌀의 날이 됐다고 한다.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하는 것도 쌀 미 자가 八 + 十 + 八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쌀의 날이 제정된 게 2015년이다. 자꾸 줄어드는 쌀 소비를 우려해 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 그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3.5kg으로 1970년의 절반 수준이었다.
1970년대는 혼분식을 장려하는 것도 모자라 무미일(쌀 안 먹는 날)까지 만들 정도로 쌀이 부족했다. 그런 시대가 언제였나 싶게 이젠 쌀 남는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쌀 소비가 줄면 쌀이 남아돌게 되고 제값 받기가 어려워진다.
쌀의 날까지 제정했건만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kg에 그쳤다. 정부와 농가의 시름도 한층 깊어졌다. 왜들 그렇게 밥을 안 먹는 걸까.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쌀 소비량이 줄어든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쌀 소비량을 산정할 때 식당이나 가구에서 소비한 양으로 기준을 잡기 때문에 쌀을 덜 먹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떡과 같은 쌀 가공품까지 포함시키면 2014년 75.5kg이나 2023년 72.4kg이나 쌀 소비량은 비슷하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들고 먹거리가 다양화됐음에도 한국인은 여전히 밥심 아니 ‘쌀 힘’을 고집하고 있다. 쌀 소비가 줄어들었다고? 그거야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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