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의 중국고전] 역천자의 말로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오주한의 중국고전] 역천자의 말로

‘구정’ 둘러싸고 운명 엇갈린 두 임금
巨野, 도 넘는 대정부 투쟁 지양해야

오주한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19 06:30:30

▲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사 탄핵 청문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간부 사망과 관련한 의사진행발언을 하던 중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홉 개의 큰 구리솥인 구정(九鼎)은 선진(先秦)시대 천자(天子)의 상징이었다. 구정을 소유했던 주(周)나라는 기원전 770년 이민족의 침략에 동쪽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일개 도시국가로 전락했다. 춘추전국시대가 개막하자 적잖은 주나라 제후는 천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구정에 눈독 들였다.

초(楚)나라 장왕(莊王)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기원전 606년 대군을 이끌고 출병해 한 이민족을 정벌한 장왕은 내친김에 낙양 인근에 주둔하며 한바탕 무력시위를 벌였다. 위기를 느낀 주천자 정왕(定王)은 사신을 보내 장왕을 접대하게 했다.

사신을 본 장왕은 대뜸 “구정의 무게는 얼마인고?”라고 물었다. ‘무게가 궁금할 정도로 구정에 대단한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신은 “치자(治者)에겐 덕이 중요하지 솥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답했다. 장왕은 “우리 초군(楚軍)의 부러진 창날들만 모아도 구정쯤은 금세 여러 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내놓지 않으면 창칼로 빼앗겠다”는 협박이었다.

주나라를 밀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장왕은 “아직 천명(天命)이 살아 있다”는 꾸짖음에 단념했다. 적법한 정부를 우격다짐으로 무찌르고 힘으로 구정을 탈취할 경우 인심은 악화될 게 뻔했다. 정도(正道)를 좇은 장왕은 머잖아 천하의 진심 어린 복종을 얻어 내고 패자(霸者)에 올랐다.

진(秦)나라 무왕(武王)은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기원전 307년 한(韓)나라를 쳐서 대승을 거둔 그는 내친김에 한나라와 국경을 맞댄 주나라 왕궁으로 쳐들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천자라도 된 듯 구정 앞으로 달려가 신나게 갖고 놀았다. 심복이자 역사(力士)인 맹열·임비·오획과 ‘구정 들기 시합’을 한 것이다.

무왕 또한 장사였으나 구정은 사람이 들 물건이 아니었다. 임비·오획은 재깍 “저희가 어찌 대왕의 신무하심을 따라가겠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냥 대왕이 이긴 셈 치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힘을 주체 못 한 맹열이 눈치 없이 나서서 구정을 번쩍 들어버렸다. 발끈한 무왕은 피눈물까지 쏟으며 용을 썼으나 그만 구정을 놓쳐서 다리가 깔려 버렸다. 정도를 어긴 무왕은 천벌이라도 받은 듯 이튿날 해를 보지 못하고 숨졌다.

거야(巨野)의 대정부 투쟁이 도를 넘고 있다. 영부인을 다짜고짜 ‘살인자’라 몰아붙이거나 정부 행사와는 별도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우격다짐으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등 점입가경이다. 나라의 질서를 무시하고 억지로 구정을 빼앗으려 한 역천자(逆天者)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되새길 때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오주한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