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의 중국고전] ‘더불엄당’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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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에 가서 뭘 해도 처형됐던 명장들
방통위 가서 뭘 해도 탄핵되는 위원장들

오주한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5 06:30:30

▲ 이진숙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요하(遼河)에 가면 져도 죽고 이겨도 죽는다.” 엄당(閹黨)의 만행을 비꼰 중국 명나라 말기의 유행어다. 엄당은 탐욕의 화신 내시들이 주축인 붕당이다. ‘엄(閹)’이란 단어는 남성성이 사라진 사내를 일컫는다.

17세기 여진족은 누르하치(奴兒哈赤)에 의해 통합돼 후금(청나라)을 건국하고 주변국들을 무섭게 압박했다. 1619년엔 사르후(薩爾滸) 전투에서 조·명(朝明) 연합군을 격파했다. 반농반목(半農半牧)의 여진족은 기마민족의 전투력과 농경사회의 생산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주변국들에선 “여진 장정 10만이 모이면 대륙을 정복한다”고 우려한 지 오래였다.

발등에 불 떨어진 명나라는 웅정필(熊廷弼)을 요하에 보내 후금을 막게 했다. 그는 나가 싸우는 대신 철통방어로 임했다. 북경(北京)을 노리던 후금은 1년이나 발이 묶였다. 웅정필의 활약에 배가 아파진 엄당은 사달을 일으켰다. 왕화정(王化貞)이란 자기 측 사람을 전선에 보내 웅정필을 견제토록 한 것이다. 왕화정은 내시들의 권세를 등에 업고 웅정필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특히 나가 싸워 후금과 결판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후금이 공격해 오자 왕화정은 수하 손득공(孫得功)에게 나가 싸우게 했다. 그런데 손득공은 애진작에 후금에 포섭된 간첩이었다. 명군(明軍)은 대패했고 책임은 분명히 왕화정에게 있었다. 허나 엄당은 웅정필까지 체포한 것도 모자라 처형했다. 왕화정의 목은 어깨 위에 멀쩡히 붙어 있었다.

웅정필의 후임 원숭환(袁崇煥)도 엄당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수성전에 나선 원숭환은 포병을 다량 양성했다. 여진은 빗발치는 포탄에 사람·말(馬)이 통째로 쓸려나가는 광경을 보며 소변을 지렸다. 누르하치마저 피를 토하며 사망했다.

후금은 원숭환이 지키는 산해관(山海關)을 우회해 북경을 일시적으로 포위했다. 부리나케 달려온 원숭환은 야전에서도 후금에게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엄당은 “배신자 원숭환이 후금에게 길을 내줬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웅정필이 말 안 듣는 수하의 패배로 죽었다면 원숭환은 이긴 죄로 처형됐다. 명나라는 분노한 백성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1년 사이 3명의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이진숙 위원장은 취임 이틀 만에 직무 정지됐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을 보면서 엄당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민의 66%는 22대 국회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정치는 서지 못한다)인 법이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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