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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와 노쇠는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노화는 단순히 늙는다는 사실을 뜻하지만 노쇠는 노화로 인해 몸이 쇠락한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태어난즉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로병사 가운데 질병 과정은 얼마든 생략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할머니다. 평소 건강 관리에 철저했던 할머니는 100세 생일을 열흘 앞둔 어느 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TV를 시청하다가 스르르 의식을 잃었다.
질병의 과정 없이 생에서 사로 옮아간 것이다. 나는 임종을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때 할머니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TV를 좋아했다.
여성 노화의 두드러진 증상으로 폐경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폐경 후에도 여성은 노쇠하기는커녕 상당히 활력 있는 삶을 산다. 노화가 노쇠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의 경우 10세 이후 생리를 시작해 40대 이후 폐경에 이른다. 인간과 가임 기간은 비슷하지만 침팬지의 수명은 40세 언저리다. 폐경과 동시에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100세 가까이 살며 노쇠 없이 긴 시간을 노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걸까. 아니, 그렇게 오래 사는데 왜 폐경이 빨리 찾아오는 걸까.
이에 대해 미국 인류학자 제임스 오코넬과 크리스틴 호코스가 ‘할머니 가설’을 내세웠다. 두 학자는 여성의 가임 능력이 일찍 중단됨으로써 얻는 이점이, 오래도록 아이를 낳은 것보다 더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출산을 통해 본인이 직접 아이를 낳는 것보다 손주들을 통해 유전자 전달 가능성을 높이는 게 인류에게 이득이라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긴 노년기는 영아 사망의 위험이 큰 인간종을 어려움에서 건져 주기 위한 자연 선택의 전략인 셈이다.
나의 할머니는 나를 5세까지 키워 주셨다. 할머니는 손자들이 장성한 후에도 당신이 건강해야 자손들이 편하다며 식생활 관리에 철저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현미밥을 고집했을 정도다.
며느리가, 딸이 손자 손녀들을 맡긴다고 너무 불평하지 말자. 인간이 노화해도 쉽게 노쇠하지 않는 것은 나이 든 인간이 인간종의 성공을 돕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그 일을 더 많이 맡는다.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긴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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